[바둑사람세상]동진세미컴 이준혁 기획실장

하이텔 ID ‘junhyuk’. 1급. 야근도중 머리가 뻐근해져 더이상 능률이 오르지 않을 때 PC통신으로 들어간다. GO HIBADUK을 치고 대국실로 들어가면 어느새 대만 공장 신설건, 미국 IBM에 제품 납품건 등 복잡한 회사일을 모두 잊는다.

같은 1급과 일합(一合)을 겨루고 나면 한 40분쯤 지난다. 비록 바둑은 졌지만 머리는 상쾌해졌다. 밤늦도록 일을 해도 지장이 없을 정도로.

동진세미컴 이준혁(34) 기획실장. 그는 일주일에 두세번 정도는 꼭 컴퓨터 바둑을 둘 정도로 바둑을 늘 품에 안고 산다. 흔한 말로 하면 그는 ‘2세 경영인’이다. 반도체 제조에 꼭 필요한 화학약품을 만드는 동진세미켐의 사장이 그의 아버지. 그러나 그가 서울대 화공과와 미국 MIT공대를 나와 박사까지 취득했다는 것을 알면 그를 쉽게 자리만 차지한 2세 경영인으로 말할 순 없다. 그는 “이곳에 들어온 것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지, 아버지의 사업에 무임승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3급인 아버지에게 바둑을 배웠다. 바둑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날로 실력은 늘어갔다. 아버지에게 9점, 8점 등 치수가 점점 내려갔다. 하지만 아버지는 난공불락이었다. 5급 시절인가. 분명 다 이긴 바둑이었는데 공연히 과욕을 부리다가 졌다. 눈물이 났다. 아버지가 나가신 뒤 바둑통을 집어 던져 깨버리고는 ‘다시는 바둑을 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사흘 뒤 슬그머니 바둑돌을 잡았다. 미움만큼 사랑도 컸기 때문일까.

“그전까진 무조건 돌진하는 바둑이었는데 그 때부터 형세가 어떤지부터 살피고 물러설지 결단을 내릴지 등을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배운 것 같습니다. 그게 그동안 생활하는데나 경영하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지금은 주말마다 아버지와 바둑을 두는데 아버지가 오히려 두점을 깔고 둔다.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렵단 옛말이 있죠. 아버지 기풍은 창업쪽에 맞는 것 같아요. 모험을 좋아하고 끈질기고…. 저는 수성 쪽이라고 할까요. 도전에 대한 응전에 강한 편이에요. 물론 수성+α를 해야겠지요.”

동진세미켐은 전체 인력 550명중 연구인력만 150명이다.

“눈앞의 실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