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는살아있다]'작은 집'

  • 입력 2000년 9월 1일 18시 30분


저는 작은 집이에요. 사람도 아니고 동물도 아니고, 하다못해 나무 인형도 아닌, 움직이지도 못하는 작은 집 한 채랍니다. 제 이름을 내건 디즈니 만화영화도 한 편 없고 제 모습이 각종 상품에 찍혀 팔려나가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저를 본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은근히 깊숙이 자리잡아, 어떤 생명체보다 더 생생히 살아 있는 집이에요. 페이지를 넘기면서 제 얼굴을 자세히 보세요. 저는 그냥 집이 아니라, 표정입니다. 똑같아 보이지만 웃기도 하고 찡그리기도 하는, 가슴 뭉클한 표정을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동화 속 주인공들이 흔히 그렇듯 저도 참 굴곡 많은 인생을 삽니다. 인생이라기보다는 역사라고 하는 편이 낫겠군요. 집을 지은 사람의 손녀의 손녀가 어른이 될 때까지 그 오랜 동안 참 엄청난 변화를 겪으니까요. 처음에는 데이지꽃 핀 언덕에서 달빛 아래 춤추는 사과나무에 둘러싸여 행복하게 살지요. 물장구를 치며 놀던 아이들이 자라 도시로 떠나는 걸 보면서 도시 생활을 궁금해하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저는 차츰 도시 속으로 들어갑니다. 아니, 도시가 제게로 번져오는 거예요.

도시 생활은 끔찍했습니다! 사람에게 버림받은 채 빌딩과 지하철과 고가도로에 둘러싸인 저는, 밤낮도 계절도 구별할 수가 없었습니다. 상처받고, 더러워지고, 너무나 외로웠어요. 제 심정 이해하시겠죠? 현대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아마 저하고 같은 기분일 거예요. 세월에 떠밀리듯 자라 낯선 세계로 들어가야 하는 아이들의 심정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그러나 저는 그런 가운데서도 꿋꿋하게 제 자신을 지켜냅니다. 저는 ‘금과 은을 다 주어도 팔릴 수가 없는’ 존재거든요. 비록 초라해 보여도 ‘안은 변함 없이 훌륭’하거든요. 그래서 그 끔찍한 생활을 이겨내고, 결국 온 도시의 교통을 몇 시간이나 막으면서 당당히 이사를 간답니다.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데이지꽃과 사과나무에 둘러싸인 언덕 위로 돌아가는 거예요.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낯선 세계에 홀로 던져져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이런 제 이야기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랬으면 정말 좋겠어요.

하지만 한 가지, 제가 언덕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아주 잘 지은 집’이기 때문이에요. 여러분은 자신이 잘 지은 집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주위 환경이 어려울수록 슬픔의 힘과 꿈의 힘으로 버텨내실 수 있나요? 그렇다면 여러분도, 그곳이 어디건, 행복과 평화가 있는 곳으로 가실 수 있을 거예요.

김서정(동화작가·공주영상정보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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