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인사동 검은색 점자블록 사용 논란

  • 입력 2000년 8월 24일 18시 41분


“미관이냐 효용성이냐.”

인도와 차도에 적갈색 점토벽돌을 깔고 길 가운데 인공 시냇물이 흐르도록 하는 등 새롭게 단장하고 있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 거리의 시각 장애인용 점자블록이 이같은 논란에 휩싸였다.

서울시와 종로구는 안국동 로터리에서 종로2가를 잇는 690m 구간에 98년말부터 46억여원을 들여 ‘역사 문화 탐방로’를 조성하고 있다. 인도의 폭을 4∼10m 늘려 보행자 위주의 거리로 만들고 인공 수로, 야외공연장, 관광 안내소 등을 설치하는 이 사업은 이달말 완공될 예정.

그러나 뒤늦게 인도에 있는 점자블록의 효용성을 둘러싸고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인도에 깔고 있는 검정색 점자블록이 주변 적갈색 점토벽돌과 색깔과 밝기가 비슷한데다 길 안내 정보를 표시하는 점자블록의 점과 선의 돌출부위나 블록크기 등이 규격에 미달돼 시각장애인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

시각장애인 가운데 전맹인 30%를 제외한 나머지 70%가 약한 시력으로 블록의 색깔과 밝기의 차이에 따라 물체를 감별할 수 있는데 인사동 거리의 점자블록은 이를 감안하지 않았다.

또 가로 세로 각각 24㎝ 크기의 블록에다 4개 선과 36개 점을 촘촘히 박아 장애인들이 발이나 지팡이 등으로 더듬었을 때 촉각성이 크게 떨어진다. 점자블록의 규격은 가로 세로 30㎝ 이상.

장애인의 사고 위험성을 고려하지 않고 보도와 인도의 경계선을 완전히 없애 길을 광장으로도 활용할 수 있게 설계된 점도 문제. 장애인 박종태씨(42)는 “인사동 거리는 장애인들의 편의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미관만을 중시한 전시 행정의 표본”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서울시와 종로구는 인사동의 특성상 전통 한옥의 정취를 살려야 하기 때문에 검정색 계통의 점자블록을 설치할 수밖에 없으며 블록의 크기도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입장이다. 종로구는 점자블록에 대한 장애인들의 항의가 잇따르자 다음 주 한국시각장애인복지재단 등 장애인 단체 관계자들과 보완책을 마련하기 위해 간담회를 갖기로 했다.

<박희제기자>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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