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헤어짐 노랫말

  • 입력 2000년 8월 18일 19시 09분


'노래에는 거짓이 없다'고 박재삼 시인의 시론(詩論)이 그렇게 시작된다. 시라고는 한 줄도 읽은 적이 없는 어머니가 아들을 무릎위에 앉혀놓고 해준 말이었다. "듣고 또 들어 보아라, 노래가사에 어디 한마디 보태고 뺄 거짓이 있는지...." 문학을 알기 엔 너무도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그는 시의 원형을 깨닫는다. 시란 본시 산문 이나 이야기가 아닌 노래이며 언어의 춤사위라는 것을, 어머니의 가르침이 바로 참 시론인 것을.

▷ '가거라 삼팔선'이라는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50년 기다림의 고통을 사흘 만남으로 달래다 만 사람들, 그들의 이별과 흐느낌을 지켜 보면서다. '아아 산이 막혀 못오시나요/ 물이 막혀 못오시나요/ 다같은 고향땅 가고 오건만/ 남북이 가로막혀 원한 천리길/ 꿈마다 너를 찾아/ 삼팔선을 탄(嘆)한다.' 반세기 끊겼던 세월이 쌓아온 기구한 사연 사연들, '세월을 한탄하랴'(삼팔선의 봄)고 몸부림 치다 다시 헤어지는 사람들...

▷ '가거라 삼팔선'은 금강산 유람중에는 부를수 없다. 유람선과 관광버스에 실을 노래반주기에 이 노래가 없다. 북측이 98년 현대측을 통해 이 노래를 반주기에서 삭제하도록 요청했던 것이다. 당시 그렇게 빠진 노래에는 '단장의 미아리 고개' '전선야곡' '꿈에 본 대동강'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굳세어라 금순아' '그리운 금강산' 등 71곡. 가사를 되새겨 보면 '그래서 그런가?' 하는 느낌도 드는게 있지만, 영 이유를 헤아릴수 조차 없는 것도 있다.

▷이제 다 터졌다. 약간의 정치성 낯간지러움에도 다들 너그러워 졌다. 그만큼 이번 만남은 70, 80년대의 그것과 다르다. 성숙 단계에 들어선 셈이다. 가리고 덮을 것이 더 이상 무엇이랴. 금지곡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노래말이 무슨 장애가 될 것인가. 노래보다 더 절절한 현실의 외마디도 들리지 않는가. "자전거 인제 사왔나?" 50년전 자전거 사러 나간 남편을 이제야 만난 할머니의 첫마디였다. 그리고 밤하늘을 우러러 보며 그리워하는 노래보다 더 뜨거운 절규도 있었다. "어머니 보름달이 뜨면 쳐다 볼테니, 달을 보며 같이 만나요."

<김충식 논설위원>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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