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속타는 동네의원-전공의

  • 입력 2000년 8월 2일 19시 24분


▼속타는 동네의원과 전공의▼

서울 강서구에서 개업한 한 내과 의사의 말. “의원은 임대평수 기준으로 최소 50평은 되어야 한다. 또 길가에 개업을 해야 한다. 그럴 경우 임대료만 1억원 정도 소요된다. 여기에 초음파 내시경 X선 심전도 폐기능 검사 장비를 구입하거나 빌리는데 1억5000만원 정도 든다. 분업체제에서는 개업을 위해 빌린 돈을 갚기는커녕 유지하기도 힘들다.”

선진국과 달리 동네의원이 대형병원과 경쟁하는 현실에서 고가의 의료장비를 마련해 놓지 않을 수 없다는 것. 그는 “동네의원과 종합병원의 경쟁은 구멍가게가 백화점과 경쟁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개원의협의회 박형근(朴亨根)총무이사는 “내시경 검사에 우리나라는 본인 부담금 1만3100원을 포함해 3만8000원을 받는데 미국에서는 우리 돈으로 70만원 가까이 받는다. 초진료가 너무 싸다. 미국 의사는 하루 20명의 환자만 받아도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우리는 소아과의 경우 하루 80명, 내과의 경우 50명을 받아야 겨우 의원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약가 마진으로 버텨온 동네의원들이 분업 체제로 들어감에 따라 문을 닫는 경우가 수두룩하게 나올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하고 있다.

의료계 2차 폐업의 핵으로 떠오른 전공의들도 이런 개원의들과 마찬가지 생각을 갖고 있다.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의사로 갈 길은 대학교수나 대형병원의 월급 의사 또는 개원의. 교수나 월급의사는 자리가 많지 않고 대부분 개원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전공의들은 개원의와 같은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 관계자는 “의사가 되기 위해 최소 11년 이상 투자해야 하는데 소명을 갖고 일하려면 약가 마진 등을 상쇄할 만큼의 수가 인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극화하는 약국과 제약회사▼

의약분업으로 환자들이 병원 근처에 있는 문전약국으로 몰리면서 동네약국들은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7월말 현재 전국 약국은 1만7433곳. 지난해보다 3000곳 가량이 줄어들었고 최근에만 833곳이 문을 닫았다.

대형병원 근처가 아니더라도 개인병원이 밀집된 상가에서는 병원과의 협조 체제로 호황을 맞는 약국이 없지는 않다. 경기 과천시 A약국은 인근 9개 개인병원을 찾아다니며 ‘읍소’ 끝에 필요한 약품을 구비해 하루 300명 정도가 찾는 성황을 누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제일제당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서구식 대형 약국잡화점 ‘드럭스토어’를 개설, 주변 소형약국들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제약업계도 업체에 따라 희비가 교차한다. 대체조제가 금지된 마당에 의사들이 오리지널약을 선택하게 되면 ‘카피(복제)약’ 생산업체가 입을 타격은 치명적. 따라서 의약분업에 포함되지 않는 일반의약품을 생산하거나 외국회사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오리지널 약을 생산하고 있는 대형업체는 큰 걱정이 없다. 하지만 카피약을 주로 생산하는 중소업체는 비상이 걸린 상태다.

제약협회 관계자는 “지역의약분업협력위원회에서 작성하는 의약품 리스트에 자사 제품을 등록시키기 위한 업체들의 마케팅이 필사적”이라며 “주로 지방 중소의원들을 대상으로 지금까지 써왔던 처방을 계속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약효동등성시험을 통과하지 못했거나 시험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품목은 자연 도태되고 있다.

의약분업으로 의약품 오남용이 개선됨에 따라 장기적으로 약품 시장 자체가 줄어들 것으로 판단, 전자상거래나 건강보조식품 등으로 경영 다각화를 꾀하는 업체도 적지 않다.

<정용관기자>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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