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심규선/일본판 '人事=亡事'

  • 입력 2000년 8월 1일 18시 39분


“적재적소에 임명했다고 생각하지만 결과적으로 사임할 수밖에 없는 각료를 임명한 것은 극히 유감이다. 깊이 반성함과 동시에 국민에게 솔직하게 사과하겠다.”

모리 요시로(森喜朗)일본 총리가 지난달 31일과 1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 같은 발언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질문에 나선 야당의원들이 뇌물을 받은 것이 드러나 경질된 구제 기미타카(久世公堯·참의원 의원·자민당)금융재생위원장 문제를 계속 물고 늘어졌기 때문이다.

모리 총리로서는 정말 하기 싫은 말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번 국회에서 자신이 선진 8개국(G8)정상회의에서 의장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했는지를 자랑하고 싶었다. 그런데 실제로는사과로 발언을 시작하는 어려운 처지가 됐다.

이번 문제는 모리 총리의 자승자박이어서 동정도 받지 못하고 있다. 구제 의원이 금융재생위원장 하마평에 오르내릴 때 익명의 투서가 모리 총리 앞으로 배달됐다. 구제 의원은 자신의 사무실 임대료(6000만엔)를 미쓰비시신탁은행이 내도록 하고 있고 한 종교단체로부터 2억여엔을 빌려 썼다는 내용이었다. 건설업체로부터 1억엔을 받았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투서내용은 나중에 모두 사실로 확인됐다.

모리 총리는 은밀한 조사를 통해 그런 사실을 확인하고도 그를 금융개혁의 사령탑에 임명했다. 구제 의원이 소속된 자민당 가토(加藤)파도 그의 부정을 알고 있었지만 자파를 입각시키기 위해 무리하게 밀어붙였다.

새로 금융재생위원장이 된 아이자와 히데유키(相澤英之·중의원 의원·자민당)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81세로 각료 중 최고령인 데다 평소 금융개혁에 대해 보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각료임명은 철저하게 파벌 세력에 따라 안배된다. 신선하지는 않지만 크게 실패하지도 않는다. 세력의 보호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의 각료경질소동을 계기로 일본에서도 ‘인사가 망사(亡事)’가 될 수 있다는 깨우침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심규선<도쿄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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