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대근/'카사노바' 재판

  • 입력 2000년 7월 26일 18시 50분


‘카사노바’ 재판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의 카사노바(1725∼1798)는 스캔들과 함께 신학교에서 쫓겨난 뒤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유럽 전역을 돌며 추문을 남겼고, 결국 자신의 이름을 ‘난봉꾼’과 동의어로 만들었지만 호색한(好色漢)으로만 유명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나온 백과사전들도 그를 문학가 모험가 바이올린연주자 등으로 적고 있다. 그가 말년에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쓴 ‘내 생애의 역사’ 12권은 18세기 유럽의 풍속과 문화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판 카사노바’로는 1955년 ‘여대생 간음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박인수(朴仁秀)가 첫손에 꼽힌다. 해병장교 출신인 그는 군복을 벗은 뒤에도 장교 신분증을 적절히 활용해 70명의 여성을 농락했다. 박인수의 엽색 행각도 화제였지만 1심 재판부가 ‘의외의 판결’을 내려 이 사건은 더욱 유명해졌다. 당시 서울지법 권순영(權純永)판사는 공문서 부정행사죄만 인정하고 혼인빙자간음 혐의에 대해선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을 보호할 수 있다”는 명언을 남겼다.

▷최근 ‘명동 카사노바’가 또 화제다. 3년 동안 216명의 여성과 관계를 맺었다는 서울 명동 한 카페 주인의 얘기다. 그는 부인의 고소로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다 이혼을 전제로 거액의 합의금을 받은 부인이 고소를 취하해 엊그제 풀려났다. 재판부는 간통죄가 친고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피고인을 석방하면서도 그의 윤리적 죄악을 그냥 넘길 수는 없었던 듯 “성을 단순한 유희의 도구로 삼아 여성을 장난감으로 전락시켰다”고 준열하게 꾸짖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간통을 처벌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중동의 이슬람국가 등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서구에선 오래 전에 이미 간통죄를 폐지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간통죄 폐지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고 신체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에 위배된다는 위헌시비가 있었지만 헌법재판소는 1990년 “간통으로 생길 수 있는 사회적 해악을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법률”이라며 합헌결정을 내렸다. 이번 사건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취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송대근논설위원>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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