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김미현/우리시대의 '관음증'

  • 입력 2000년 7월 25일 19시 09분


영화 ‘동감’에서 선배를 좋아하는 여주인공 소은은 몽롱한 눈으로 말한다. 그 선배는 자신의 두 눈을 동시에 보지 않고 한쪽 눈을 본 후 다른쪽 눈을 본다고. 아마도 너무나 다정스럽게 쳐다본다는 뜻일 게다.

오해일지라도 사랑이란 이처럼 눈이 ‘맞는’ 행위임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짝짓기 TV프로에서도 서로 ‘눈도장’을 찍어야 커플이 되기 쉽단다.

그렇다면 ‘미션 임파서블2’의 오류는 명백하다. 이 영화에는 가면 쓰기가 몇 번 나온다. 그중 가장 황당한 경우는 정부요원 헌트와 자신의 옛 애인인 니아의 관계를 의심한 테러리스트 앰브로즈가 헌트의 얼굴 가면을 쓰고 니아를 시험할 때이다. 가면을 써도 바꿀 수 없는 것이 눈이다. 그러나 니아는 사랑하는 헌트의 눈을 한번도 쳐다보지 않은 여자처럼 너무 쉽게 그 가면에 속는다. 눈빛이 강렬한 헌트로서는 심히 서운한 일일 듯하다.

물론 이런 눈의 정신적 기능에 대한 조롱도 가능하다. 눈이 대표하는 순수한 사랑이나 도덕 자체가 허위나 허구라는 것이다. 위반의 철학자 바타이유의 소설 ‘눈이야기’에는 사제를 욕보이고 살해한 후 그의 안구를 자신의 음부에 넣고 즐기는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바타이유는 그런 신성모독을 통해 금기의 초월을 보여준다. 그래서 고귀한 신체인 눈을 더럽힘으로써 저속한 성기와 동일시하거나 거세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정신의 양지이기도 하고 음지이기도 한 눈이 몸 밖으로 나가면 ‘거울’이 된다. 나르시스의 물이 일어서거나 딱딱해진 것이 바로 거울이기 때문이다.

지나치면 자기애나 분열증이 되지만 거울은 기본적으로 자아의 발견이나 성찰의 기능을 한다. 그래서 프레이저에 의하면 거울은 눈처럼 ‘영혼의 형식’에 해당한다. 자신의 눈으로는 자신의 눈을 볼 수 없다. 그래서 타인의 눈에 해당하는 거울이 필요한 것이다.

당연히 이런 거울과 카메라 렌즈는 다르다. 거울은 자신을 보기 위한 것이지만 카메라 렌즈는 남을 보기 위한 것이다. 카메라 렌즈의 이런 관음증적 쾌락 때문인지 요즘 TV는 가히 ‘훔쳐보는’ 카메라의 전성기같다. 더욱이 중독성까지 있어 몇 달 동안 지속적으로 보게 한다. 인기그룹 GOD가 아이를 기르는 인간적인 모습, 탤런트 이의정이 키를 크게 하려고 흘리는 피와 땀, 탤런트 윤다훈이나 이본이 기(氣)를 모으는 신기함, 개그맨 백재현이 레슬링을 씨름처럼 하는 코미디를 매주 조금씩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들은 ‘트루먼’처럼 사적인 시간에도 자신들을 지켜보는 ‘카메라의 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마치 푸코가 연구한 ‘원형감옥(Panopticon)’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감시자의 시선에 언제나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파놉티콘’은 ‘모든 것을 본다’는 뜻이다. 혹시 우리의 눈이 바로 그런 감시자의 눈이 되어 그들을 투명한 감옥에 가둔 것은 아닐까. 그런 우리를 통제하는 더 교묘한 권력의 시선은 모르는 채.

지금의 우리 사회는 자신과 대면하려는 최소한의 나르시즘조차 부족한 듯하다. 남을 몰래 훔쳐보는 관음증만 판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라면서도 ‘나’가 아닌 ‘남’만 본다. 자의식은 없고 현시욕만 있다. 내 탓은 없고 네 탓만 있다.

물론 가장 중증의 환자는 국회의원들이다. 국회를 자칭 ‘개판’으로 만든 것은 자신들인데도 마치 자신만 인간인 것처럼 남의 탓을 한다. 그래서 아직도 욕설과 몸싸움, 날치기가 횡행하는 국회를 개판이라고 한다면 개들이 오히려 그 말에 모욕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이다.

이윤기의 소설 ‘누군가가 보고 있다’에서 불륜에 빠진 유부남은 죄의식 때문에 누군가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결국 그가 내린 결론은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거…그건 바로 내가 아닌가 싶더라고…”이다.

가장 무서운 감시자와 처벌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카메라의 렌즈가 아닌 거울을 통해 자신을 되비춰보자. 자신에게로 ‘피드백’이 안되는 관음증은 더 심각한 불감증을 부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눈 자체가 바로 또 다른 지문(指紋)이기 때문이다.

<김미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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