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렇군]정재승/음식점 소음은 얼마나?

  • 입력 2000년 7월 19일 18시 43분


요즘 영국에서는 레스토랑의 시끄러운 정도가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는 기사가 종종 신문 지면에 등장한다.

특히 심플한 장식의 넓고 텅 빈 공간과 양탄자 없는 맨 바닥이 음악소리와 사람들의 대화를 크게 울리게 한다는 지적이다. 잘 나가는 퍼브(영국식 선술집)나 와인 바의 경우 소음의 정도가 귀에 치명적인 수준이어서 웨이터들이 청각 장애를 막기 위해 귀마개를 착용해야 할 정도라는 것. 상황이 이쯤 되면 단골 손님들도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

외식 문화가 영국인들의 귀를 위협하는 문제로 이슈화되자 영국의 과학 주간지 ‘뉴 사이언티스트’는 조사팀을 만들어 런던 근교 레스토랑들의 소음 실태 파악에 나섰다. 소음 측정기를 이용해 레스토랑 실내의 소음을 측정해 본 것이다.

그 결과 런던 웨스트 엔드에 자리한 한 현대식 레스토랑은 무려 98데시벨을 기록했다고 한다. 영국 노동청에 따르면 98데시벨은 돼지가 사육장에서 사료를 먹을 때 내는 소음 수치. 이런 비유를 달가워하는 영국인들은 없었겠지만.

퍼브나 와인 바의 시끄러운 정도는 현대식 레스토랑을 능가한다. 평균 100데시벨을 넘기는 곳도 예사. 이 정도 소음이라면 공사판에 자리를 깔고 열심히 돌아가는 드릴 머신 옆에서 식사를 하는 것과 같다. 소음 수치가 90데시벨이 넘으면 옆 사람의 귀에 입을 대고 말을 해야 겨우 대화가 통한다.

레스토랑의 소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뉴 사이언티스트’는 옛날식 인테리어를 권한다. 현대식 콘크리트 벽을 두꺼운 벽지로 덮는다거나 나무 바닥을 두꺼운 카펫으로 덮으면 소리가 흡수된다는 것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보기엔 여러모로 촌스러울 테지만.

영국에서 일고 있는 레스토랑의 소음 문제는 우리 나라의 레스토랑과 술집을 떠올리게 한다. 시끄러운 정도로 따지면 영국에 뒤지지 않는 곳이 바로 우리 나라 호프집과 레스토랑 아닌가!

레스토랑이 시끄럽다는 것은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불평을 늘어놓을 만한 일도 못 된다. 그런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일부러 레스토랑을 찾는 이들도 있을테니까. 하지만 조용한 음악을 배경으로 깔고 작게 얘기해도 대화가 가능한 레스토랑이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은 누가 뭐래도 서글픈 일이다.

꽉 막힌 도로 위의 자동차 경음기 소리와 일년 열두 달 도시를 달달볶는 건설 현장의 소음 공해로부터 도망쳐 편히 쉴 수 있는 ‘조용한 레스토랑’이 그리울 때가 있다. 레스토랑이 아니어도 세상은 너무 시끄럽기 때문이다.

정재승(박사·예일대 연구원)jsjeong@boreas.med.yale.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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