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칼럼]유럽이 美기업을 사들이는 이유

  • 입력 2000년 7월 16일 18시 55분


요즘 미국에는 86년부터 90년까지 불어닥쳤던 외국투자의 물결이 또다시 일고 있다. 일주일에 최소 1건씩은 대표적인 미국 기업이 거대한 외국 기업의 일부로 흡수됐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미국 자동차시장을 잠식해 들어오던 일본 자동차에 맞서 국산(미국산)차를 사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고 호소하던 크라이슬러는 메르세데스와 합병해 다임러크라이슬러가 됐다.

엄격히 말하면 캐나다 업체이지만 영업기반을 미국에 두고 있는 시그램은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러 조만간 프랑스의 비방디에 흡수된다. 가장 최근에는 스위스 UBS은행이 미국의 대표적 투자은행 중 하나인 페인웨버를 인수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일주일에 1건씩 합병"▼

이번에는 80년대와 비교해서 조금 다른 점이 있다. 80년대에는 외국 기업이 미국 기업을 소유하는 데 대해 미국 국민의 반응은 대단히 부정적이었다.

다른 나라들이 미국 기업에 대해 똑같은 반응을 보일 때 미국이 이를 근시안적인 반응이라고 비웃었던 것을 생각하면 매우 어리석은 짓이었다.

어쨌든 이번에는 미국인들이 다소 침착하게 외국투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같은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그 한가지 원인은 아마도 미국 기업을 주로 인수했던 기업이 80년대에는 일본 기업이었지만 요즘은 유럽 기업이라는 데 있는 것 같다. 미국인들은 유럽 기업을 일본 기업만큼 적대적으로 보지는 않는 것이다.

일본 기업들은 자기들만의 규칙에 따라 인수합병전을 벌였지만 유럽 기업들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80년대에는 미국이 자체 경제가 허약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기업들을 외국에 팔아넘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외국 기업들이 미국의 견실한 경제에 대한 부러움으로 미국 기업을 인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日기업 인수엔 거부감▼

지난번 외국투자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은 85∼86년경 일본 엔화와 유럽 통화에 대한 미국 달러화의 가치가 곤두박질 치고 있을 때였다. 이 때문에 미국 기업은 특히 주식이 몇 배나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일본기업에는 상대적으로 매우 값싸게 보였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져서 달러화나 주가 모두 견고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유럽 기업들은 이러한 때에 왜 미국 기업을 사들이고 있는 것일까. 이는 미국이 신경제의 놀라운 활력에 힘입어 성장 전망이 밝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신경제 노하우 함께 인수▼

외국 기업들은 단순히 미국의 기업을 매입할 뿐만 아니라 노하우까지 인수해 미국이 가진 신경제의 활력을 자기네 나라로 가져가고 싶은 것이다.

미국인들의 인식도 달라졌다. 80년대에 미국은 자기불만에 가득차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감으로 바뀌었고 어느 외국 기업이 미국 기업을 인수하든지 미국식으로 동화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미국 기업을 팔면서도 반대로 외국 기업을 사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임러크라이슬러도 기업의 공식언어로 독일어 대신 영어를 선택하지 않았는가.

미국은 아마도 세계화는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통행’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만큼 성숙한 사회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리〓신치영기자>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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