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특집]美초등생 "명문대 진학" 강박감 시달려

  • 입력 2000년 7월 4일 19시 03분


초등학교 때부터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이제 한국이나 일본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명문대에 진학해야만 성공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초등학교 6학년생들까지도 입시 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지는 지난 6개월간 수도 워싱턴과 11개 주의 초등학교 6학년생 221명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미국 초등학생들이 겪고 있는 대학입시 스트레스에 관한 특집기사를 3일 게재했다.

이 신문은 “인터뷰에 응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시험성적을 성공의 새로운 기준으로 여기는 부모들이 남보다 앞서라고 강요한다고 대답했다”고 전했다.

‘아이비 리그(미 동부 명문대학들)’를 나와 성공한 부모들은 자식도 같은 길을 걷도록 하려고, 그렇지 않은 부모들은 자식만이라도 성공시키려고 초등학교 때부터 하버드 예일대 등 명문대 진학의 중요성을 자식들에게 불어넣고 있다는 것.

부모들은 자식을 격려할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부담을 느낀다는 것이다. 뉴욕에 사는 라엘 헤일(12)은 “3, 4학년 때부터 하버드대에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하버드대는 너무 벅차서 대신 뉴욕대에 가고 싶은데 부모님 생각은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워싱턴에 사는 맥스 매쇼어(12)는 “부모님과 친척들이 동네 대학은 C급, 주립대학은 B급, 아이비 리그 대학은 A급이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며 “조그만 대학에는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일부 초등학생들은 벌써부터 인터넷을 통해 모의 대학진학적성검사(SAT) 시험을 쳐보거나 유명 대학 홈페이지를 뒤져 입시와 장학금 등에 관한 자료를 모으기도 한다. 또 주말에는 자기가 가려는 대학의 안내책자를 읽거나 직접 캠퍼스에 가보는 학생들도 있다.

일상 생활도 입시 위주로 짜여진다. 한창 뛰놀 나이지만 방과후에 취미 활동보다는 가정교사로부터 보충교육을 받거나 대학 입시에 도움이 될 활동을 하는 것이 보편화됐다.

이러다 보니 두통 불면증 불안 초조 등 전형적인 스트레스 증상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메릴랜드주에 사는 칼리사 카터(12)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시간은 잠잘 때뿐”이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만투아초등학교는 스트레스에 관한 과목을 6학년 정규 교과과정에 포함시켜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이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모든 학생이 입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아니다. 어떤 학생들은 주변에서 명문대 입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 TV 앞에서 빈둥거리는 것보다 삶의 목표를 깨닫고 올바른 방향을 알게 해준다며 긍정적인 반응도 보인다. 어쨌든 조기교육과 고등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요즘 미국 초등학생들은 부모들은 겪지 않았던 입시 스트레스를 일찌감치 겪고 있다. 입시지옥을 피해 미국으로 자녀들을 조기 유학보내려는 한국 부모들이 잘 따져봐야 할 대목이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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