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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6월 26일 19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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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측근의 ‘단언’▼
우려했던 대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이한동(李漢東)자민련총재를 총리자리에 앉히면서 DJP공조가 사실상 복원됐다고는 하나 이는 예상했던 일인데다 DJ로서도 그 이상 야당의원 빼가기를 시도하지는 못할 거라는 점에서 결정적 타격은 아니다. 일면 정치 도의적 명분을 상실한 DJP공조를 비판하면서 일면 상생의 정치로 DJ를 압박해 나간다면 불리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큰 정치를 앞세워 ‘차기 대권 수임자’의 면모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던 이총재에게 ‘남북정상회담 성공’이란 복병이 나타났다. 대의상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박수만 치다가는 정국의 주도권을 고스란히 DJ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지 않은가. 결국 ‘총론 찬성 각론 반대’의 딜레마를 피하기 어렵게 됐다. 더욱이 탁자 위의 유리잔 같은 남북관계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삐끗하면 지금의 ‘감상적 진보’는 하루아침에 ‘종래의 보수’로 돌변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개연성에 비춰볼 때 이총재의 딜레마는 이해할 만도 하다. 그러나 이총재의 딜레마가 행여 한 측근이 단언했다는 “남북정상회담은 결국 실패할 것”에 근거하고 있다면 심각한 문제다.
물론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물은 이제부터 만들어 나가야 하고 거기에는 야당의 견제와 비판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성공을 전제로 한 비판과 실패를 전제로 한 비판은 그 접근방식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이총재는 과거 냉전시대 인사들에 둘러싸인 채 ‘보수 행보’를 고집하고 있지는 않은지, 결코 그러리라고는 믿지 않지만 ‘실패를 전제로 한 비판’이란 오해의 소지는 없을지 성찰해야 한다. 이제 한국 정치는 그 외연이 한반도 전체로 넓혀졌다. 남쪽만의 ‘좁아 터진 정치’로는 안된다. 더 이상 지역과 정파에 매달린 채 권력잡기에만 급급해서는 설령 권력을 잡는다한들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열어 나가기는 어렵다. 이총재는 소극적 수세적 보수 행보에서 벗어나 DJ가 놓은 ‘통일의 다리’를 스스로 이어나가 완성시키겠다는 적극적 전향적 자세를 보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큰 정치고 ‘대권후보 이회창’이 해야 할 일이다.
▼‘南南대화’의 속내는▼
딜레마에 빠져 있기는 DJ도 마찬가지다. 그는 새로운 남북시대를 열어 나가야 하는 시점에 가장 보수적인 정파와 손잡기 위해 애를 먹고 있다. 원내 안정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총리자리도 주고 온갖 몽니도 받아줘야 한다. 여권의 생각은 야당의 ‘실패를 전제로 한 비판’에 끌려 다니다가는 DJ의 남은 임기 안에 그 어떤 남북정상회담의 가시적 성과도 이뤄낼 수 없으리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어렵다. 남남(南南)대화의 속내가 이럴진대 남북대화가 잘 풀려 나갈지 걱정이다.
이총재는 스스로 딜레마의 족쇄를 풀어야 한다. 이총재가 족쇄를 풀면 DJ가 딜레마에서 벗어나는데도 적잖은 힘이 될 것이다. 현실 정치를 모르는 얘기라고 웃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시대는 그런 큰 정치, 큰 정치인을 필요로 하고 있다. 시대적 민족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을 때 이총재는 ‘큰 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눈앞의 권력보다는 역사와 미래를 봐야 한다.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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