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대우CP 사라" 금감위 윽박…이제와선 발뺌

  • 입력 2000년 6월 13일 19시 17분


“금감원 고위층에서 밤새도록 전화를 하면서 윽박질러 마지못해 다음날 새벽녁에 겨우 사인을 했습니다”

대우 담보CP(기업어음) 처리를 놓고 자산관리공사와 팽팽히 맞서고 있는 투신(운용)사 한 임원은 지난해 악몽같은 7월의 어느날 하루를 되새기며 이렇게 말했다.

“투신사 사장과 운용담당 임원들은 그날 금감위 고위층 전화를 피하려고 집에도 가지 않고 여기저기로 도망다녔습니다. 그런데 밤 12시부터 걸려온 전화는 새벽 3시가 넘도록까지 끊이질 않고 울려댔습니다”

금감원은 대우부도를 막기 위해 은행에 돌아온 자금 4조원을 투신사와 은행들이 해결하도록 지시했다. 99년 1월부터 7월까지 회수한 대우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투신사와 은행들이 모두 토해내라고 한 것. 투신사들이 2조3000억원을 지원하고 은행도 1조7000억원을 내놓았다. 담보는 김우중(金宇中) 당시 대우그룹회장이 갖고 있는 주식과 부동산으로 정부측은 10조원어치라 했지만 실제 평가로는 2조원을 약간 웃도는 상황이었다는 것.

당시 금감위원장이었던 이헌재(李憲宰)위원장을 비롯,김상훈(金商勳) 부원장과 강병호(姜柄皓)부원장 김영재(金暎才) 대변인 등이 앞장서서 투신사 사장들을 다그쳤다. 김재찬(金在燦) 자산운용검사국장과 심형구(沈亨求) 자산운용감독국장,실무과장급들도 상부의 명령을 받고 투신사에 전화공세를 폈다.

99년 7월 26일 새벽 2-3시경에 투신사 사장들의 결재사인을 받고 그때까지 퇴근을 않고 있던 실무책임자들의 자금집행에 의해 대우부도는 겨우 막을 수 있었지만 한달후 대우그룹은 워크아웃 판정을 받았다.

당시 지원총대를 멘 투신사 임원들은 최근 연일 모임을 갖고 정부를 상대로 대우 담보CP를 정부가 100% 전액 상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감원은 문서를 절대 남기지 않았습니다.하지만 일부 투신사들에 금감원 고위층의 인수지시 내용을 담은 녹음테이프가 있어 만약의 경우 관치금융 사실을 낱낱이 공개할 것입니다” 8000억원의 손해를 볼 지경에 이른 투신사와 은행들은 담당 임원들이 자리를 걸고 정부와 일전을 불사하고 있다.

<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

▼투신권 "수조원 추가손실" 반발▼

대우 계열사 부실채권의 양도가격을 둘러싸고 자산관리공사와 투신권이 강경 대치하고 있다.

공사가 투신권으로부터 올 2월 넘겨받은 대우 무담보채권과 앞으로 넘겨받을 대우 담보채권의 매입가격을 예상보다 많이 깎아내리고 있어 투신권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

공사는 2월 초 투신권으로부터 대우 무담보채권을 넘겨받으면서 장부가의 평균 34%를 잠정 매입가격으로 제시했으나 최근 이 매입가격을 2∼30%씩 낮춘 정산안을 각 투신사에 알렸다.

정산안에 따르면 ㈜대우 무담보채권의 매입률이 15.5∼16.5%로 2월 이관시 18.0%에 비해 낮아진 것을 비롯, △대우자동차 33.0%→29∼33% △대우중공업 65%→34∼36% 등으로 각각 떨어졌다.

지난 2월1일 정부는 대우채 대량환매를 앞두고 자산관리공사가 투신권의 대우 무담보채권 18조6000억원을 평균 장부가의 34%에 해당하는 6조4000억원에 일단 사들이고 추후 가격을 재산정하기로 했다.

투신사들은 “자산관리공사의 해외채권 평균 매입률인 40%에도 턱없이 모자란다”며 “공사안 대로라면 수천억원대 추가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투신권이 가지고 있는 대우 담보 기업어음(CP)은 더욱 심각한 쟁점이다. 투신사들은 대우 담보CP의 지원은 전적으로 정부 요구를 수용해 이뤄진 만큼 발행가의 100%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공사측은 손실분담을 원칙으로 발행가의 60% 정도에서 매입한다는 입장이어서 타협 여지가 작다.

금감원 관계자는 “투신권이 지나치게 많은 손실을 안게될 경우 자본시장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밝혀 공사측 매입가격이 다소 상향될 수 있음을 내비쳤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