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재벌도 금융社도 "합쳐야 산다"

  • 입력 2000년 6월 8일 23시 52분


'인수합병(M&A)만이 살길.'

금융 기업 구조조정이 급피치를 올리면서 인수합병이 유력한 생존전략으로 부상했다.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을 막기 위해, 혹은 재무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시키기 위해 파트너를 찾는 인수합병 전략이 대세로 굳어가는 인상이다.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이후 벤처업계에서 간헐적으로 이뤄져온 인수합병은 이제 재벌, 대형 제조업체로 전선을 넓혔다. 금융기관 2차 구조조정이 가시화되면서 금융기관들도 ‘짝짓기’ 도상연습에 들어갔고 일부 도태위기에 몰린 기관들은 마지막 카드인 인수합병에 적극적이다.

▽걸림돌 대부분 사라져〓외환위기 직전 국내 시장은 인수합병의 무풍지대였다. 70년대 미국에선 ‘정크본드의 황제’ 마이클 밀켄의 등장으로 인수합병이 유력한 구조조정 수단으로 각광받았지만 ‘가업(家業)’전통에 젖은 국내 대기업들은 소유권을 넘기는 인수합병에 강한 거부감을 보여왔던 것.

그러나 인수합병의 세계적 바람은 IMF 구제금융과 함께 찾아왔다. 정부는 IMF와의 합의에 따라 ‘지분 25%+1주 의무공개매수’ 등 대표적인 반(反)M&A 조항을 철폐했다. 대기업 알짜계열사는 물론 은행까지 해외자본에 팔아치웠다. 재정경제부는 최근 증시부양을 위해 “적대적 M&A를 부추기겠다”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임재우 세종법무법인 변호사는 “현재 남아있는 법적인 규제는 ‘5% 이상 지분 장외매집시 공개해야 한다’는 정도에 불과하며 이같은 개방도는 거의 선진국 수준”이라고 말했다.

▽재벌사도 인수합병에 동참〓IMF체제 이후 대표적인 인수합병 사례로는 5대재벌의 ‘빅딜’이 꼽힌다. 그러나 이 빅딜은 정부의 의지가 강하게 개입되는 바람에 LG반도체 등 해당업체의 강력한 반발을 샀고 의미가 퇴색됐다. 과잉설비나 인력문제도 아직 미해결 상태.

8일 시장에 알려진 한솔엠닷컴 제일투신 등 재벌기업들의 인수합병은 순수한 독자판단에 따른 것. 한솔의 경우 시장점유율이 가장 낮아 퇴출 가능성마저 제기됐고 제일투신은 자본확충이 여의치 않자 해외 파트너로 눈을 돌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밖에 LG정보통신 LG전자처럼 그룹 내부 지분정리나 사업구조조정을 위한 인수합병도 다반사로 진행되고 있다.

▽코스닥을 살리려면 인수합병 부추겨야〓장기 침체를 겪고 있는 코스닥시장에서는 ‘인수합병만이 살길’이라는 공감대가 강하다. 영업이익을 못내는 기업들의 마지막 생존법이라는 지적.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코스닥의 주가조정과 인수합병의 역할’이란 보고서에서 “코스닥 주가가 바닥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이사회의 M&A 결의도 쉬워진다”며 “여유자금이 소진돼가는 벤처기업들은 사업전략, 재무전략 차원에서 인수합병에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감원 관계자도 “코스닥에는 청산가치마저 변변찮은 기업들이 적지 않다”며 “인수합병을 통해 기업가치를 유지하는 것이 구조조정의 충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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