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Digital]'변호사 망국론' 전주곡인가

  • 입력 2000년 6월 7일 19시 02분


변호사들의 ‘일탈(逸脫)’과 ‘비행(非行)’이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다.

법조인들은 “변호사 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일부 법조인들은 “이 추세대로라면 미국과 같은 ‘변호사 망국론(亡國論)’까지 나오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잇따르는 사건 사고〓4일 3900억원대 금융사기범 변인호(卞仁鎬)씨의 도주에 현직 변호사가 핵심 역할을 한 것이 알려지면서 서울 서초동 변호사 업계는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 법을 앞장서 지켜야 할 법조인이 범죄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는 점에서 일반 시민이 느끼는 충격도 크다.

지난달 29일에는 사기혐의로 재판을 받아오던 박병일(朴炳一)변호사가 실형 확정 하루 전 미국으로 도주한 사건이 발생했다. 또 3월에는 13억원대의 사기 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8개월째 수배중이던 청주의 손모 변호사가 검찰에 구속됐다.

현대 계열사의 일부 고문 변호사들은 지난해 8월 검찰의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 수사 때 사건 축소은폐와 진술 조작 등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현대쪽에 적극 제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행위는 피의자에 대한 통상적인 ‘조력’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범죄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의뢰인들의 주머니를 노리고 불필요한 소송을 부추기는 사례도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급증하는 변호사와 경쟁 격화〓법조인들은 변호사 비행 증가의 직접적인 원인은 변호사 수의 급증과 이에 따른 경쟁 격화, 업계 불황 등에 있다고 보고 있다.

우선 변호사 수는 문민정부 사법개혁에 따라 크게 늘어난 사법시험 합격자들이 97년부터 배출되기 시작하면서 급증하고 있다. 개업 변호사 수는 97년 말 3364명에서 올 5월 말 4185명으로 24% 증가했다.

수입은 변호사 수 증가에 반비례한다. 서울변호사회의 경우 90년 1인당 수임사건 수는 59명이었으나 지난해 말에는 47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건당 수임액도 거의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낮아졌다. 따라서 그동안 사무실 경비나 임대료가 오른 것에 비하면 실상은 더욱 어렵다.

이같은 상황에서 경쟁에 탈락, 기본 ‘생존’이 어려운 변호사들이 나올 수밖에 없고 이들이 자신의 법률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전문범죄의 유혹을 받을 가능성이 많다고 법조인들은 지적한다.

▽변협의 대책과 전망〓변협은 7일 회원변호사들에게 주의를 당부하는 공문을 보내고 이를 언론에 공개했다. 그러나 이같은 조치는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변호사들 스스로 판단하고 있다.

한 변호사는 “최근 잇따라 발생한 사건은 본격적인 ‘변호사 범죄 시대’의 서막에 불과할 수도 있다”며 “법률전문가의 범죄는 일반인의 범죄에 비해 사회에 미치는 해악이 큰 만큼 심각한 고민과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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