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교수의 법과 영화사이]생과부 위자료소송

  • 입력 2000년 5월 24일 14시 02분


생과부 위자료소송 (1999)

감독: 강우석

출연: 안성기,심혜진, 문성근,황신혜

코미디 〈생과부위자료소송〉은 그저 한바탕 웃어넘길 영화가 아니다. 여자의 입으로 ‘신성한 법정’에서 “자지” “좆”과 같은 비어를 함부로 내뱉는 시원한 언어의 배설행위 이면에 담긴 진중한 메시지를 알아야만 한다. 그것은 한국사회의 본질에 대한 풍자와 심판이다. 이 영화는 성장일변도로 숨가쁘게 달려온 한국사회의 근대화 과정을 심판하고, 장래에 나가야할 길을 제시하는 심각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별로 당차게 보이지 않는 30대 여인이 변호사 사무실에 나타나서 소송사건을 의뢰한다. 남편 회사를 상대로 이름하여 ‘생과부위자료소송’을 제기하려는 것이다. 회사가 남편을 너무나 혹사한 결과 나날이 공방(空房)의 생과부가 된 책임을 물어 2억원의 위자료를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고 싶다는 것이다.

진지한 의뢰인에게 명성기 변호사는 법적으로 전혀 고려의 가치가 없는 허무맹랑한 발상이라고 핀잔을 준다. 실망한 모습으로 사무실을 나서는 그녀를 바로 옆 사무실의 여자변호사 이기자가 불러들인다. 명성기와 이기자는 부부간이다. 부부가 합동으로 법률사무실을 경영하고 있는 셈이다. 이기자는 명성기에 대한 비판을 퍼부으면서 자신이 사건을 맡겠노라며 한 판 승부를 건다. 소송이 진행되면서 온갖 에피소드가 동원된다. 피고 일산그룹의 변호사인 명성기와 원고의 변호사 이기자의 대결은, 남성윤리와 여성윤리의 정면 대결로 발전한다. 이는 곧 주류 한국사회의 기득권 세력 대 도전세력 사이의 윤리관의 대결의 성격을 띤다.

명성기 변호사는 허우대로 보아 명성기(名性器)를 보유한 것처럼 보이나 실체는 허약하기 짝이 없다. 잠자리에서도 이기자의 숨은 능력을 감당하지 못해 핑계만 있으면 회피하려 하고, 어쩌다 자신이 주도한 실전에서도 허덕인다. 그러면서도 옷을 되 입는 순간부터는 허세를 부린다. 名器의 허약한 실체는 남성중심 세계의 기만과 허위를 상징한다. ‘이기자’라는 이름도 도전적이다. 남성의 지배 세계에 대해 던지는 결연한 여성의 도전장이다.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은 여성의 미덕으로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인간애를 들었다. 문학과 예술이 추구하는 목표가 인간세상이 과연 살만한 세상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데 있다면, 인간애라는 여성적 미덕을 구현함으로써 평화롭고도 안온한 세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도 은연중에 이러한 누스바움의 철학을 대변하고 있다. 일산그룹 부장 (문성근)은 더없이 충실한 회사원이다. 회사가 살아야만 자신도 산다는 소신, ‘평생직장’의 신화를 신봉하는 가족적 기업관, 그리고 비록 회사가 자신을 버리더라도 자신은 회사를 배신할 수 없다는 민춤한 정직함을 좌우명으로 삼고 직장생활을 해온 착하고 막힌 샐러리맨이다. 가히 아름다울 정도로 맹목적인 그의 직업관은 회사 일을 떠나서는 자신의 삶 자체도 없다는 사적 신앙으로 발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신의 노력의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잦은 대기발령, 전출, 해외출장, 구조조정을 내세운 퇴출의 위험뿐이다.

아내 이경자의 입장은 그러하지 아니하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 아내와 남편의 몸은 하나라는 일신동체론(一身同體論)의 신봉자다. 남편의 몸에 접근할 권리가 있는 데도 그 소중한 남편의 몸을 회사가 망가뜨렸으니 돈으로 물어내라는 것이다. 신혼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과장 때까지는 그래도 일주일에 두 세 번씩 진한 잠자리를 나누었으나 지위가 높아지고 신상에 대한 불안도 가중되자 거의 불능이 되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민법 750조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고 규정한다. 이른바 불법행위의 조항이다. 이 조항을 근거로 2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다.

열띤 법정공방 끝에 원고가 승소하고 벼랑에 몰려 섰던 의뢰인과 변호사 커플의 결혼생활도 새로운 발전적 결합의 계기를 맞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재판장은 최종 판결을 내리기에 앞서 이 사건의 시대적 의미를 정리하는 중대한 발언을 한다.

“한 때는 노동자를 빨갱이로 여긴 시대가 있었다” 라고 말문을 열면서 노골적인 노동법 위반 사례는 몰론, 명퇴권유, 정리해고 대기발령 등 각종 눈에 보이지 않는 악랄한 수법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유린해온 기업에 대해 가차없는 비판을 퍼붓는다. 그리고 그 인권유린의 한 사례로 근로자 가족의 성적 권리의 침해를 인정한 것이다.

영화가 의도하는 바는 이경자 개인의 승리가 아닐 것이다. 원, 피고 쌍방의 변론에서 제기되었듯이 이 영화의 진짜 피고는 대한민국 그 자체이다. 인권의 유린과 인간성의 희생 아래 경제성장 일변도로 달음박질해온 역사에 대한 심판인 것이다. 이 영화는 경제 성장과 성해방이 결합된 세태를 법제도를 통해 발전적으로 수용한다는 신선한 발상이 돋보인다. 투쟁이 법정에서 벌어진다는 것, 그 법정투쟁을 여성이 주도한다는 것, 그리고 변호사라는 직업여성이 주부를 개안시켜 개인적 문제에서 사회 개혁의 단초를 열게 한다는 것, 이 모두가 시대의 흐름과 법의 역할을 전달하기에 적절한 플로트일 것이다. 이러한 의도는 서초동 법조의 모습을 그리는 방법과 내용에도 잘 나타나 있다.

첫째, 영화에 그려진 법률실무의 현장은 여태까지의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깬다. 우선 판사가 법정에서 웃는다. 여태까지 우리 나라의 법정영화가 충실하게 지켜 온 불문율 중의 하나는 판사는 근엄해야만 한다는 원칙이다. 웃는 얼굴을 하면 판사의 품위와 재판의 권위가 떨어진다는 것이 법원의 수칙이기도 하다. 근엄한 얼굴에 강압적인 질문을 무기로 재판의 권위를 높이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웃는 판사의 모습을 통해 법이라는 조직과 기계가 아니라 인간의 판단을 받는다는 안도감을 주고 법과 착한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를 좁혀준다.

둘째, 남성의 철옹성인 법의 세계에서 여성이 법률실무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여러 가지 간난과 고충을 부각시킴으로써 여성법률가의 사명감을 촉구한다. 이경자와 둘이서 나눈 “원샷” 소주 파티에서 이기자는 법과대학 학생과 초임검사 시절, 여자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개인적 성공으로 만족하지 않고 사회제도를 바꾸는 데 나서야할 자신의 책임을 역설한다.

“네 남편은 우리의 적이야” “네가 남편과 나눈 은밀한 이야기를 네 적에게 털어놓은 사내야.” “사내공화국 ” “좆도민국과 맞서 싸우는 것이야.“

90년대 초에 작은 파문을 일으킨 ‘서울법대 여학생’ 이란 ‘시’가 있었다. “서울법대 여학생, 학력고사 무게에 평생을 가위눌려 틀 속에 갇힌 천형의 무기수” 로 시작하여 “서울법대 여학생, 수석입학 수석졸업, 수석출석 수석불감, 왼갖 수석 독점해도 말석교수 한사람 못 만드는 천하의 둘치“로 끝난다.

결코 수준 높은 시는 아니지만 담긴 메시지만은 선명하다. 여성의 개인적 성공이 남녀가 불평등한 사회의 개혁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그 의미가 반감된다. 이기자의 변호사의 “대한민국, 사내공화국, 좆도공화국”에 대한 투쟁에 ‘가정과 출신’ 주부 이경자도 동참하여 “자지를 한 방 맞고 뻗었다” 라는 법정 진술을 서슴치 않는 여전사로 변신한다.

우리 나라의 대학에서 ‘가정과’는 사라진지 오래다. 대신 생활과학과, 소비자 아동학과 등 새로운 이름으로 개명했다. 여성에게 가정이 바로 생활무대의 전부였던 시대가 자나간 만큼 새로운 역할과 그 역할에 대한 자각이 필요한 것이다. 이경자는 은밀한 글, 자신의 남편을 위해 쓴 글이 법정에서 조롱감이 되자 “비록 시골변소의 낙서에나 등장할만한 내용이라도 내게는 청와대 변소나 마찬가지로 소중한 것이다”라고 맞서며 “내 남편은 내 몸이다. 내 자존심을 위해 싸운다”라고 역설하다.(〈여성의 몸을 위한 철학적 성찰〉(2000) 참조. )

그러한 가정부인 이경자가 “경제를 이렇게 만든 놈들 모두가 적”이라는 사회적 깨달음을 통해 비로소 남녀평등의 법제도의 실현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이 영화는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환상을 깬다. 많은 대한민국 국민이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그릇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보다 변호사가 더욱 사회적 신분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명성기와 같은 기업변호사 또한 “대기업의 소모품”에 불과한 미미한 존재이다. 고등학교 동창생인 일신그룹의 조이사는 시조일관 명성기에 대해 철저한 우위를 유지한다. 변호사는 고용된 서버스맨에 불과하다. 그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고객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라도 일거리를 빼앗기는 신세이다. 이렇듯 고객과 서비스맨 사이의 주종관계를 분명히 선언해 주는 한국영화도 거의 없었다.

코미디 영화 〈생과부 위자료소송〉의 진수는 신기운의 태동과 이를 가로막는 중간장애자, 그리고 양자간의 대립이 화해로 결말지으면서 사회발전의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세익스피어 희극의 전형적인 전개방식을 따르고 있다. 마지막에 회사의 해외발령을 거역하고 아내에게 돌아오는 문성근과 허위의 탈을 벗고 이기자에게 비로소 “사랑해”라고 말하는 명성기. 말없이 처진 남편의 어깨죽지를 거들어 올리는 이경자와 “그 말하기가 그렇게 힘들었어? 이 좆만아” 라며 파안의 포옹을 선물하는 이기자의 당당함 속에 분명히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안경환<서울대 법대 교수> ahnkw @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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