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나는 세상]前고려증권출신 20명, 실직동료돕기 출자

  • 입력 2000년 5월 19일 20시 06분


"자, 건배."

맏형격인 이승배(李丞培)한국산업투자자문 사장이 선창하자 둘러서 있던 20여명의 샐러리맨들이 함께 건배를 외쳤다. 18일 저녁 서울 여의도 백상빌딩 2층 일식집 '유조(友助)'의 조촐한 개업식.

이날의 주인공 이상하(李相河·49)씨는 주방장 옷이 아직은 몸에 익지 않은 듯 내내 쑥스러워 하는 표정이었다. 평소 소주 두세 잔에 빨개지는 그이건만 이날만큼은 동료들이 건네주는 술잔을 다 받아 마셨다.

이씨가 운영하게 될 식당은 옛 직장 동료 20명이 십시일반으로 출자한 주식회사. 그들의 도움으로 새 생활을 시작한 이씨의 얼굴이 모처럼 희망으로 빛났다. 가시밭길 같았던 지난 2년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흐른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가 닥치면서 다니던 회사 고려증권이 문을 닫았다. 20년 직장생활이 마감되는 순간이었다. 일본 도쿄(東京)사무소 부소장까지 지낸 이씨는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막막하긴 했어도 '내 실력으로 어디 가면 입에 풀칠 못할까' 하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차가웠다. 그럴듯한 사원 모집광고를 보고 찾아가면 하나 같이 기본급도 없는 영업사원이었다. 일자리를 찾다 제풀에 지칠 때쯤 만난 일이 정수기 외판원.

아내가 "당신처럼 숫기없는 사람이 무슨 외판원이냐"고 뜯어말릴 때 부부싸움까지 해가며 "두고 보라"고 큰소리쳤지만 쉽지 않았다. 형제 친척들에 대한 순례가 끝나자 더 이상 찾아갈 곳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옛 증권업계 선후배 동료들을 찾아 나섰다. 6개월 동안 10개를 팔면서 자존심에 입은 상처는 그렇다 치더라도 나 살겠다고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될 것 같아 외판원 일을 접었다.

한없이 작아진 그에게 이제 남부끄러운 일이란 없었다. 때마침 과천시청에서 '세계마당극제'를 하면서 일본어 안내원을 뽑았다. 한달 50만원을 받는 공공근로요원이 됐다. 그 생활도 5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이후 30∼40 군데에 이력서를 내보았지만 마흔이 훌쩍 넘은 그를 받아주겠다는 곳은 없었다. 제조업체에선 이씨의 경력이 아예 인정되지 않았고 증권업계는 이미 파릇파릇한 30대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절망적이었다. 뭔가 기술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아내와 한달을 끙끙거린 끝에 일본요리를 배우자고 결론을 내고 과감하게 학원에 등록했다. 학원에 다니면서 6개월이 지났을 무렵, 코엑스에서 열린 '창업박람회'에 갔다가 주소를 써놓고 온 게 화근이었다.

부동산업자라는 사람이 전화를 해 좋은 상가가 나왔다고 소개한 것. 찾아가 보니 그럴 듯했다. 퇴직금에 전재산을 모아 1억원에 계약을 하고 입점만 기다리던 이씨 부부는 지연되는 공사 앞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조심했건만 분양사기를 당한 것.

벼랑 끝에 선 기분이었다. 이씨의 딱한 사정을 전해들은 동료들이 그를 위해 주식회사격으로 식당을 만들어주자고 한 것이 그 무렵. 순식간에 20명이 모여 작게는 250만원, 많게는 1000만원씩 출자했다.

"IMF관리체제 이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회사에서 조직문화는 사라졌다. 옆자리 동료는 내 고객을 빼앗아 가는 경쟁자일 뿐이다. 옛정을 살려 어려운 친구를 도와주자는 의견에 선뜻 동의한 것은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 있는 뭔가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아이낸스 박병택·朴炳澤전무)

"몇몇 억대 연봉자들에 가려진 대다수 증권맨들은 외롭고 쓸쓸하다. 돈만 쫓아 냉혈한처럼 사는 것 같은 증권쟁이들에게도 끈끈한 우정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동부증권 이상돈·李相敦부장)

'친구들의 도움'이라는 뜻을 상호에 담았다는 이씨는 "증권맨들이 만든 식당이니 만큼 종합주가지수가 떨어질 때는 음식값도 싸게 받는 것으로 우정에 보답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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