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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5월 15일 19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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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의 메카’인 이곳에 진출하는 한국 벤처기업들이 부쩍 늘고 있지만 실리콘밸리행이 곧 국제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게 실리콘밸리 현지에서 받는 인상이다.
가령 국내에서 꽤 잘나간다는 한 벤처기업의 얘기는 얼굴을 화끈거리게 했다. 이 기업이 현지 벤처캐피털에 제시할 사업설명서에는 "10년내 한국시장에서 770억달러의 매출을 올릴 계획이다. 또 조만간 10억달러의 외자를 유치하겠다”는 거창한 청사진이 들어 있다. 770억달러라면 재벌그룹 전체의 매출과 맞먹는 규모. 그러나 어떤 식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건지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또 한 기업은 사업비전을 설명하면서 무턱대고 "나의 경쟁상대는 빌 게이츠”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용감한 한국인에게 현지 투자가들은 "그 기백이 훌륭하다”고 박수를 보내지 않았다. 현지사정을 잘 아는 한 한국인은 "차라리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하청업체로 선정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현실적 목표를 제시했더라면 호응을 얻었을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몇 안되는 한국벤처간의 부실한 '네트워크’도 한국벤처기업들의 약점이다. 예컨대 한국 벤처끼리 연대하려고 해도 '어디에’ '어떤 기업이 있는지’ 제대로 파악이 안되는 실정이다.인도나 대만의 벤처기업들이 활발히 만나고 정보교환을 하는 것에 비해 "한국벤처는 실체가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설익은 아이디어와 거창한 포부는 설령 국내에선 통할지 몰라도 프로들이 각축하는 실리콘밸리에서는 설 땅을 찾기 어렵다. 한국벤처는 '실리콘밸리의 아마추어’라는 소리만 들을 뿐이다.
<이명재 경제부기자>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