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변사와 함께 추억속 여행…전주국제영화제 이색행사

  • 입력 2000년 5월 1일 19시 47분


영화를 ‘상영’하지 않고 ‘공연’하는 이색행사가 지난달 29일 밤 전주에서 열렸다. 전주국제영화제 특별프로그램으로 마련된 ‘변사 공연’ 쇼. 미국 무성영화 ‘괴인 서커스단의 비밀(The Unknown)’(1927년 작)을 한국어로, 한국 무성영화 ‘검사와 여선생’(1948년 작)을 영어로 변사가 공연한 프로그램이었다.

한국어 해설을 맡은 신출(72)은 현존하는 마지막 변사. 열 두 살 때부터 변사를 시작한 그는 전성기이던 50년대 초반까지 전국을 누비며 영화 100여편을 해설했다. 또 영어 변사를 맡은 재미교포 월터 K 류(44)는 시인 겸 비교 문학 연구자로 198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뉴욕 버클리 등에서 변사 공연을 시작했다.

영화와 관객의 틈새에서 새로운 의미를 길어올리는 변사들의 공연에 의해 두 편의 영화는 해설이 없을 때와는 전혀 다른 영화들로 변주됐다.

“첫 대가리를 잘못해도 끝에 가면 다 들어맞게 되니까 마음 놓으세요”라며 마이크를 잡은 신출은 파도를 타는 듯 유장한 가락으로 ‘괴인 서커스단의 비밀’을 해설했다.

반면 월터 K 류의 ‘검사와 여선생’ 영어해설은 낭랑한 미성(美聲)으로 듣는 시 낭송회처럼 품격있는 분위기였다. 그는 여선생이 길을 걷다 웅덩이를 피하는 장면에서는 “웁스!”라며 감탄사까지 넣는 등 소리없는 장면들을 생생하게 재현해내는 데 집중했다.

이들은 이미 1985년에 만난 구면. 신출은 “미국에 변사가 없는데도 이 친구가 연구를 워낙 많이 해 ‘검사와 여선생’도 다 맞게 했다”고 관객을 웃겼다.

<전주=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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