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부동산업계 '新-舊전쟁'…영업권싸고 다툼 가열

  • 입력 2000년 5월 1일 19시 35분


‘부동산 업계는 지금 전쟁 중.’

정부가 지난해 일자리 마련 차원에서 부동산 공인중개사를 대량 양산한 이후 기존 부동산 업소들이 담합해 신규로 개업한 업소에 매물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바람에 고객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일부 지역에선 신구 부동산업소 간의 영업권 다툼이 격렬해지면서 중계수수료까지 바가지를 쓰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부동산업소 왕따전쟁▼

경기 일산과 분당 평촌 산본 등 수도권 신도시와 서울 목동 상계동 등 아파트 밀집지역 신규 부동산업소들은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존 업소의 횡포를 고발하는 제소를 10여건씩 제기한 상태.

기존 부동산업소들이 지난해 4월 별도의 친목회를 형성, 신규 공인중개사들에 대해 부동산 매물의 정보를 차단하고 음성적인 거래규제에 나서자 자구책 차원에서 집단 반발하고 있는 것.

기존 업소들은 회원업소가 신규 업소와 정보를 교환하거나 거래할 경우 수수료의 3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물리거나 심지어 PC통신을 통해 매물정보를 교환하는 ‘거래정보망’도 회원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망을 운영하며 신규 업자들을 ‘왕따’시키고 있다. 기존 업소를 인수한 경우에만 회원으로 받아들여주기 때문에 신규 업소로서는 ‘울며 겨자먹기’로 비싼 프리미엄을 주고 기존 업소를 인수해야 영업을 할 수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이들 지역에서 ‘친목회 회원증은 양반문서’라는 말까지 돌고 있다.

▼왕따의 부작용▼

신구업자 간 다툼으로 1000만∼2000만원 하던 기존 업소의 권리금이 3000만∼4000만원까지 치솟았고 부동산정보망의 회원 ID가 몇백만원씩에 거래되는 부작용을 빚고 있다.

경기 일산지역의 한 신규 부동산업소는 최근 문을 닫은 기존 부동산업소를 1500만원의 권리금을 주고 산 뒤 900만원을 받고 다른 업종의 업소에 되팔았다. 결국 ‘친목회 가입비’로 600만원을 낸 셈이었다. 또 다른 신규 업소는 아예 600만원을 주고 최근 문을 닫은 친목회 회원업소의 ID를 샀다. 일부 지역에서는 아예 300만∼700만원의 가입비를 요구하고 있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분규 원인▼

이런 현상은 정부가 지난해 실업자 구제 차원에서 한해 3000명 가량 뽑던 공인중개사를 1만2000명까지 대량 늘려놓고 정작 이들에 대한 단속은 방기하면서 촉발됐다.

정부는 지난해 이들 부동산업소에 대한 지도 단속권을 위임해온 부동산중개인협회를 법정단체에서 임의단체로 전환시키면서 일선 경찰과 관할구청에 단속권한을 넘겼다. 그러나 정작 이들 관청에서는 단속여력이 없어 부동산업체의 담합현상을 방치해오고 있는 것.

게다가 지난해 법규 개정과 함께 각 구청에 의무적으로 설치하게끔 돼 있는 ‘부동산업소 분쟁조정위원회’ 설치 조항마저 없애버리면서 그나마 있던 자율조정 능력까지 상실하고 말았다.

▼고객피해 극심▼

신규 업소를 찾은 고객들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매물정보를 제때 알 수 없고 담합업소들이 조금만 ‘장난’을 치면 중개수수료를 바가지쓸 수밖에 없다. 실제 최근 이사철을 맞아 중개수수료 바가지가 다시 기승을 부리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신규 업소 중개인들은 주장한다.

부동산중개인협회 관계자는 “협회 회원들에 대한 지도단속이 없어지다 보니 중개수수료를 바가지씌운다든지 무허가중개인(속칭 떴다방)에게 속아 피해를 본 거래사고 신고가 지난해에 비해 20% 가량 증가했다”고 말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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