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득헌의 스포츠 세상]축구강국 하루아침에 될일 아니다

  • 입력 2000년 5월 1일 18시 35분


‘축구는 민족성의 표현’ ‘축구는 예술’이라는 말을 새삼스럽게 되뇔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그 말이 입가를 맴도는 것은 아무래도 지난주 한일 축구 친선경기와 2002년 월드컵이 겹쳐져 아른거리는 탓일 게다.

모처럼 대표팀의 경기를 직접, 그것도 관중석에서 팬의 생생한 소리를 들으며 관전한 나는 사실 두 가지 점에서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나는 팬의 기대와 비판의 목청이 지나치거나 가혹하다고 느껴졌고 또 하나는 경기내용이 시종 시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쟤를 바꿔야지, 왜 그래’라는 한 관중의 아우성에 이어 결승골을 터뜨린 하석주는 바로 그 ‘쟤’였다. 결국 경기는 ‘이기니까 기분이 나쁘지는 않구먼’으로 끝났다. 축구대표팀에게도, 축구협회에도, 축구 팬에게도 다행한 결과였다.

그러나 나는 우리 축구계의 ‘해제(解題)능력과 속도’에 우려를 떨치지 못한다. 사실 우리 축구의 문제나 지향할 바는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이면 모두 느끼고 알 만한 일이다. 문제는 ‘실천’일 터인데 그것이 예나 지금이나 ‘말과 계획’을 따르지 못하는 게 축구계 형편이고 친선경기 내용은 그 여파를 또 확인케 했다고 본다.

가장 세계화된 우리말은 ‘빨리 빨리’라는 얘기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성으로 지칭되는 ‘은근과 끈기’는 그와 상충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한일전은 대표팀이건 관중이건 승부에 집착해야 할 과제였다는 점에서 베테랑의 긴급소집은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모였다 해도 최고선수들인 만큼 전통에 입각한 ‘이런 게 한국축구’라는 정체성을 보여야 했으나 그렇지 않아 해보는 소리이다. 일본은 기술축구 지향에 분명한 진척이 있지 않은가.

세계 축구는 74년 이래 유럽과 남미가 서로 장점을 흡수하며 전술의 다양성을 주도, 최근에는 시스템 무용론까지 제기된다 한다. 그래도 나는 축구 문화라든가 전통에 바탕을 둔 전술 개발을 중시한다. 축구 종주국 영국이 롱킥과 돌진을 고집하고, 독일은 개개인을 철저하게 팀의 일원으로 쓰며, 이탈리아가 자물쇠 수비에다 개인기가 뛰어난 1, 2명을 돌격대처럼 활용하며, 남미 국가들이 개인기를 전술의 핵으로 삼는 것을 지나치지 말자는 것이다. 이들의 축구는 세계적 흐름의 줄기가 어떻든 그 색깔은 여전하다. 축구는 문화와 전통에 독자적 전술을 접목시키는 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축구 강국은 하루아침에 될 일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한일전을 계기로 우리 축구는 ‘본디 형체’를 보다 확연히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체력이 달리는 투지와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는 전술은 촌스럽게 보일 뿐이다.

윤득헌〈논설위원·체육학박사〉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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