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흥행3걸' 여성제작자 김미희-오정완-심재명씨

  • 입력 2000년 4월 24일 19시 04분


지난해 가을부터 올 봄까지 잇따라 한국 영화 흥행 1, 2, 3위를 기록한 ‘주유소 습격사건’(서울관객 96만명)과 ‘반칙왕’(〃 70만명), 그리고 ‘해피 엔드’(〃 58만명). ‘흥행 3걸’ 영화의 제작자는 공교롭게도 모두 30대 중반의 여성들이다. ‘좋은 영화’(주유소 습격사건)의 대표 김미희씨(36), ‘영화사 봄’(반칙왕)의 대표 오정완씨(36), ‘명필름’(해피 엔드)의 대표 심재명씨(37)가 그들.

▼다르게 생각하는게 힘▼

볕 좋은 봄날에 만난 이들은 “영화의 성공과 우리가 여자인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작품의 완성도와 배급, 마케팅이 잘 맞아 떨어진 결과 흥행에 성공했을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세 사람은 모두 1988년 영화사와 극장 기획실에서 영화일을 시작했다. 심대표는 “우리들의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것에 굳이 연관성을 찾자면, 10년 넘게 영화산업의 현장에서 뛰며 기본기를 닦아온 사람들이 일을 낸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영화계가 ‘난장판’이어도 프로페셔널한 세계다. 창조적으로 사고하는 힘으로 승부가 가능하다”는 오정완 대표의 말처럼, 이들의 무기는 진부하지 않은 기획과 다르게 생각할 줄 아는 힘이다.

‘주유소 습격사건’과 ‘반칙왕’이 기존의 영화와 다른 만화적인 상상력에서 출발했다면 ‘해피 엔드’는 진부한 소재일 수도 있는 불륜을 ‘세기말의 치정극’으로 멋지게 포장해낸 마케팅의 덕을 톡톡히 봤다.

서로의 장점에 대해 묻자 약속이나 한 듯, “심대표는 마케팅의 귀재다”, “김대표는 인간관계와 조직에 뛰어나다”, “오대표는 실험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짱을 갖췄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번 흥행은 마케팅 덕분"▼

‘시스템의 영화’라 할 상업영화계의 정점에 오른 이들에게 ‘충무로에서 여자로 일하기’는 어떤 것이었을까?

“여자인 것? 쓸데없이 구설수에 오르니까 귀찮다. 대중에게 호소하는 장르인 영화 제작에 기득권층이 아닌 여성의 시각이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오정완)

“어려움이 있었다면 여자라서가 아니라, 능력이 부족해서였을 것이다. 남녀를 가르는 건 재능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선입견같은 것이다.”(김미희)

▼"후배에게 길 터주기" 소망 ▼

이들은 19일 발족된 ‘여성영화인 모임’에 모두 참여했다. 교류의 필요성을 느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고 싶다”는 소망이 강했다. 심대표는 “성별을 떠나 준비된 사람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누구든 영화일을 하려면 오랜 시간을 견뎌낼 끈기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심대표는 현재 ‘JSA’를 제작 중이며, 김대표는 장진 감독의 ’킬러들의 수다‘를 준비 중이다. 오대표는 임상수 감독의 디지털영화 ‘눈물’의 제작을 시작했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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