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용석/세계사의 교훈 간과말아야

  • 입력 2000년 4월 23일 20시 56분


극적으로 남북정상회담 일정이 발표되면서 밝은 기대감과 어두운 신중론이 교차되고 있다. 밝은 기대감으로는 한반도의 냉전구조해체, 한반도 평화헌장 채택, 남북 군비감축, 이산가족면회소 개설, 남북연락사무소 설치, 월드컵축구 및 올림픽 단일팀구성 등을 떠올린다. 경제적으로는 북한의 남한기업 생산기지화, 전기 전가 자동차 건설업체들의 북한특수, 의류업체들의 임가공 생산공장 설치, 이중과세 방지협정, 투자보장협정, 청산결제기관설치 등에 대한 꿈이 펼쳐지고 있다.

신중론은 북한에 의해 당하기만 할 뿐, 준 것 만큼 얻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정상회담은 총선책략이고 1회로 끝나며 북한으로의 국부(國富)유출, 주한미군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미전향 장기수 석방 등 일방적 안보기반 자진 해체 쪽으로 밀린다는 우려가 그것이다.

지나친 낙관은 곧 이어 좌절과 불신 그리고 허점을 빚어내고 과도한 신중은 전진을 가로막는다는 데서 냉철한 분석이 요청된다. 그런 맥락에서 북한의 속성과 분단국들의 경험 및 교훈들을 참고 할 필요가 있다.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주목하지 않으면 안될 네가지 요목들을 적시해 두고자 한다.

첫째, 서독의 정치적 화해와 경제적 교류협력이 동독의 적대의식과 대결자세를 허물어내지 못했다는 점을 유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서독은 동방정책을 내걸고 동독에 대한 정치적 화해는 물론이려니와 엄청난 경제지원을 서슴지 않았다. 통일 직전 양독간에는 연간 90얼달러의 교역이 실시됐으며 700만명의 인적교류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독정권은 동독인들에게 대서독 투쟁 정신을 독려하였는가 하면 동독 군부는 늘 공격개시 지휘체제를 유지했으며 핵무기 전개연습까지 했다. 이러한 사실은 통일후 입수된 동독측 비밀서류들을 통해 밝혀졌다. 똑같은 맥락에서 한국이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에 정치적 화해와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해도, 북한은 남조선 적화투쟁 을 늦추지 않을 것이며 군사적 공격태세를 후퇴시키지 않으리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둘째, 소련과 서방진영의 경제교류는 소련의 군사력을 증강시켜주었다는 교훈을 되새겨야한다. 소련은 서방의 경제이원으로 군사력을 강화했고 더욱 모험주의와 대결적 자세로 임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제협력 역효과는 서방 학자들에 의해 밝혀진바 있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의 대규모 대북 경제지원이 북한의 군비증강을 돕는 결과가 되지 않을는지 우려된다.

셋째, 대만과 중국의 경제교류 또한 중국의 대만에 대한 군사위협을 도리어 증대시킨 결과를 빚고 있다는데 유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대만은 중국본토에 300억달러를 투자했고 4만여명의 기업인이 진출해 있으며 연간 200만명의 대만인들이 중국을 방문한다. 하지만 중국은 대만에 대한 군사위협을 더 한층 격화시켜가고 있을 따름이다. 대만과 중국관계의 사례를 보더라도 경제적 교류협력, 확대는 두 체제의 군사격돌의 위험도 수반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북한에 대한 성급한 기대가 위험스럽다는 것을 환기시켜준다.

넷째, 예측불허의 김정일 1인 우상화 체제 속성으로 보아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이 정치 군사적 화해자세로 간단히 나서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북한이 정치적으로 남한과 화해할 때 1인체제가 무너지고 경제적으로 개방하면서 교류협력할 경우 우리식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된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은 대결과 불신을 풀기위한 접촉과 탐색의 시작일 뿐이다. 당장 북한이 김대중 대통령의 김일성묘지 참배를 들고나올 때 국론은 분열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는 동서독, 대만과 중국, 소련과 서방진영의 선례와 교훈에 유의하며 긴 안목에서 냉철히 임해야 한다.

정용석<단국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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