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정갑영/민간經協 활성화 토대만들자

  • 입력 2000년 4월 18일 19시 28분


숱한 바람과 화제를 몰아왔던 총선이 결국은 ‘바꿔’ 열풍으로 막을 내렸다. 병풍(兵風)과 세풍(稅風) 북풍(北風) 속에 시민연대까지 가세해 전체 의석의 절반을 신인으로 바꿔놓았으니 민심을 실은 바람의 위력이 정치판을 흔들어 버린 셈이다. 그 와중에서도 바람의 위세는 서로 달랐던 것 같다. 병풍이나 세풍, 시민연대의 바람몰이는 많은 후보자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었지만 북풍의 영향력은 지역마다 달랐기 때문이다. 분단 이후 최초의 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영향력은 선거 때마다 등장했던 상투적인 북풍의 폐습(?)에 오염되어 지역정서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던 것이다. 비록 선거는 끝났지만 과연 정상회담의 북풍은 앞으로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올 것인지, 기대는 이제부터 시작되고 있다.

▼엄청난 북特需 가능성 적어▼

이번 정상회담은 당연히 정치적 긴장을 완화시키고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새로운 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남북관계의 정상화 노력은 여러 번 실패했지만 그래도 이번 회담에 큰 기대를 거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도 이제 변화할 수밖에 없는 벼랑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식량과 에너지, 외화난이 십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경제가 어떻게 외부의 도움 없이 생존해 나갈 수 있겠는가. 따라서 외부의 협력을 받기 위해서라도 햇볕정책으로 신뢰기반을 구축해온 우리 정부와 정상화를 모색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고려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차원의 기대와 환상은 좀더 신중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 같다. 당장 엄청난 북한특수가 터져 우리 경제를 획기적으로 개선시킬 가능성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장기적으로 국가위험도를 낮추고 투자환경을 개선시킬 수는 있어도, 단기적인 환상을 갖기에는 북한의 여건이 너무 열악하기 때문이다.

우선 북한경제는 외부로부터 받아들일 수 있는 투자의 흡수능력이 크지 않다. 북한의 총경제 규모는 170억달러에 불과하고 항만과 도로 등 사회간접시설과 산업시설의 낙후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여건에서 북한경제는 연 13.5% 이상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제약조건을 갖고 있다. 이보다 높은 성장률은 인플레를 유발시키고 경제의 균형을 파괴하여 북한체제 자체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인력과 기술, 사회간접자본 등의 부족으로 투자의 수용능력에 물리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적정 성장률을 역산하면 연 3억∼5억달러 이상의 투자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이것은 북한에는 엄청난 규모이지만 우리에게는 그리 크지 않다. 북한의 국민총생산(GNP)이 국내 대기업 하나의 매출액 정도밖에는 안되기 때문이다.

투자자금을 어떻게 조달하느냐도 문제가 된다. 국내에서 조달되는 자금은 그만큼 기회비용이 크다. 다시 말하면 북한보다 국내에 투자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경제적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외부에서 조달할 수 있는 경우에만 투자효과가 크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 일시에 외부금융으로 조달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따라서 북한에 대한 사회간접자본의 투자는 소규모 파일로트 프로젝트부터 추진해야 하며 특수를 기대한 대형사업의 추진은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는 일방적인 원조나 개발사업보다는 민간주도의 경제협력이 활성화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복잡한 대북투자절차의 개선과 함께 북한과의 투자 금융 및 임가공 사업의 활성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구축해주어야 한다. 정상회담은 이러한 제도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초점이 모여야 한다.

▼민간부문부터 활성화해야▼

민간수준의 협력은 상호 인센티브에 따라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실패의 위험도 낮고 경제적 파급효과도 더 크게 나타난다. 햇볕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정부의 직접 지원보다는 민간부문에 대한 북한의 의존도를 높임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정갑영<연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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