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Digital]'정보바다의 독버섯' 인터넷 사기

  • 입력 2000년 4월 12일 19시 23분


대학생 김소연씨(21·여)는 지난달 아르바이트를 구해주는 인터넷 사이트에 구직광고를 냈다. 며칠 뒤 ‘서울 압구정동에 사는 여고생’으로부터 “회원을 추천하면 돈을 주는 사이트 20개에 가입하고 ‘추천인’란에 내 ID를 적어 주세요. 그럼 과외교사로 모실게요”라는 E메일이 왔다. 김씨는 그 요구에 따른 뒤 ‘여고생’에게 전화를 했으나 결번이었다. ‘여고생’은 인터넷사기범이었다. 김씨 같은 피해자만 수십명에 달했다.

▼특징과 실태▼

‘익명(匿名)의 바다’ 인터넷에서의 사기는 피해자가 수백명이어도 범인의 몽타주조차 만들 수 없다. 개인별 피해규모가 작아 신고도 수사도 잘 되지 않는다. 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 윤진원검사는 “‘누구’를 잡아달라고 할 수 없으니 신고가 어려운 것”이라며 “ID와 계좌를 모두 도용했다면 범인 찾기는 더욱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회사원 오모씨(31)는 지난해 말 인터넷 영어학원에 가입하고 수강료 30만원을 온라인 송금했으나 인터넷 강의 3일째 사이트가 없어져 버렸다. 입금계좌는 엉뚱한 사람 명의였고 사이트 등록자의 신원정보는 알 길이 없었다.

“비싼 경품을 미끼로 회원을 모은 뒤 신상정보를 팔아넘기고 사이트를 없애버리거나 10만원을 입금하면 50만원짜리 상품권을 준다고 유혹해 돈만 챙기고 도주한 사례도 있다. 신고 당한 사이트 사업자 중 15%가 연락조차 안된다.”(안현숙 한국소비자보호원 소비자상담팀 과장)

▼미국의 경우▼

미국 전국소비자연맹(NCL)에 신고된 인터넷사기는 96년 689건에서 99년 1만660건(피해액 약 32억달러)으로 3년만에 15.5배가 늘었다.

초창기에는 인터넷 피라미드판매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온라인경매 사기가 80% 이상을 차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미연방수사국(FBI)은 5월 직원 160여명으로 구성된 ‘인터넷사기 전담센터’를 설립해 본격적인 조사활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우리의 대책은▼

“인터넷 강국인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인터넷사기가 범람하는 상황을 곧 맞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전화나 PC통신만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현행법률로는 인터넷 사기범을 수사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어렵다.”(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관계자)

정보통신부는 ‘인터넷세상’과 맞지 않는 관련법률의 개정안을 마련중이고 각종 인터넷범죄 신고센터도 개설중이며 공정거래위도 전자상거래 전담부서를 올해 안에 발족할 계획.

대검 컴퓨터범죄전담수사반 이광형검사는 “인터넷사기를 추적하려면 가상공간에서도 범죄자의 ‘꼬리’를 잡을 수 있어야 한다”며 “접속기록(login file) 작성 및 보존을 의무화하고 인터넷 사업자의 신원은 반드시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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