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홍사종/시대변화 발맞춘 지면혁신 참신

  • 입력 2000년 4월 9일 20시 50분


옷로비 사건 때 증인으로 참석했던 앙드레 김에게 우리의 신문들은 옷 사건 규명의 본질과는 다른 ‘구파발 출신 김봉남’이라는 이름을 일제히 부각시켜 독자들을 끼득거리게 만들었다.

세계적 디자이너로 성공한 그에게 이미 실효된 것이나 다름없는 본명 김봉남이라는 이름 속에서 신문과 독자가 찾아낸 것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리 현상의 하나인 잘 나가는 사람을 끌어내리기 위한 집단적 가학심리와 거기서 얻어낸 쾌감이다.

여당 실세 부인이 거액 보험모집에 관한 정보 자료가 유출되자, 또 우리 신문들은 20여년간 보험모집인으로 남편 뒷바라지를 해온 저간의 사정은 차치해 버리고 도의적 측면의 문제점만 부각시켰다.

그런데 이 사건의 더 근본적이고 중요했던 문제는 도덕성 이전의 ‘신용정보누출금지법’을 위반한 행위 자체였다. 많은 신문이 이 본질적이고 중요한 법 위반에 대한 기사를 소홀히 취급했다. 기사를 읽다보면 이처럼 사회적 감정에 편승해서 본질이 왜곡되는 경우를 종종 만난다.

우리의 독자는 대부분 기사의 행간의 의미를 곰곰이 되씹어보는 경우가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신문기사의 큰 제목들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예단하고 감정을 이입시키는 데 익숙한 독자들에게 지난주 금요일자 1면 머리기사는 또 하나의 ‘앙드레 김’ 기사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선관위가 총선 출마자 335명 중 13.1%인 44명이 금고 이상의 실형을 받았다고 밝힌 1차 공개 내용만 분석해보면 ‘반사회 파렴치 전과 수두룩’이라는 큰 제목의 주관적 방향과 일치점이 찾아지지 않는다. 그나마 시국사건(40.3%)을 빼면 ‘수두룩한 전과자’들이라는 표제 선택은 왠지 정치권 전체, 심지어 총선 전체를 독자와 함께 도덕적으로 폄훼해 버리고 싶은 과장된 집단가학 심리를 은연중 노출한 표현이 아니었을까.

지면 한편에서는 유권자의 깨끗한 선거참여를 열심히 외치면서 우리가 선택할 정치인들이 콜레라나 페스트균 중의 하나라는 등식을 은연중 만들어 나가지 않도록 제목과 기사 한줄에서 사실 보도에 신경 쓸 일이다. 동일자 다른 신문지면의 제목과 비교해 보기 바란다. 총선이 있는 날 관광지 예약이 만원이라는 기사를 보면서 이같은 무심한 제목 한줄이 기권자 양산에 일조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지난 한주간 동아일보는 적지 않은 지면을 혁신했다. 3일자 A9면의 ‘지구 자연 인간’ 기획기사, 4일자 A18면의 ‘모색 디지털 사회의 새 좌표’, 7일자 A9면의 ‘금요대토론 미성년 상대 성범죄자 신상공개’ 등의 내용은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독자들의 높아진 문제의식과 함께 분석 조망해본 참신한 시도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3일자 A27면 ‘내고향에선’ 지면의 일률분할식 기사배분 방식은 경중을 무시해 성의없어 보인다. 내고향 사람까지 외면하는 지면이 됐다면 혁신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싶다.

홍사종(숙명여대 교수·문화관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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