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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3월 19일 19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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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야당지도자인 천 당선자는 수도 타이베이(臺北)의 민선시장을 지내면서 개혁정치가로서의 이미지를 뿌리내렸다. 대만 유권자들은 그의 개혁성향을 높이 산 것이다.
대만의 총통선거 이후 우리의 관심사는 중국과 대만 사이의 이른바 양안(兩岸)관계다. 대만독립 정책이 포함된 민진당 당헌 때문에 대륙의 중국 정부는 천 후보가 당선될 경우 무력사용도 불사하겠다고 위협했었다. 중국이 대만을 군사적으로 위협하는 것은 미국과 일본의 동아시아 정책에 대한 도전에 해당한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최근 한 연설에서 “양안간의 위협을 대화로 전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중국의 주룽지(朱鎔基)총리는 “태평양 사이(중국과 미국)의 위협을 대화로 전환해야 한다”면서 미국은 중국의 대만정책에 간섭하지 말라고 역공했다. 이처럼 양안관계에 긴장이 고조돼 미-중 관계가 불편해지면 한반도 평화를 지원하는 국제체제 역시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만 유권자들은 그가 집권한다고 해도 중국이 무력을 행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천 당선자가 즉각 대만 독립노선을 정책화하거나 중국이 무력사용 위협을 실천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우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전망이다. 중국과 대만은 양안관계가 국제안보에 강력한 파급효과를 준다는 점에서도 서로 신중해야 한다.
천 당선자는 한국의 2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을만큼 친한파로 알려져 있다. 한국-대만 관계는 1990년 한-중수교 이후 소원해졌다. 당시 한국정부는 한반도 주변에 평화로운 환경을 만든다는 목표 아래 중국과 수교하느라 오랜 우방이던 대만과 서운하게 단교한 것이 사실이다. 중국이 내세운 ‘하나의 중국 정책’은 국제사회에서 대부분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지만 대만에 충분한 사전양해를 구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대만간 기업인과 학자들의 실질교류는 정식 국교가 단절되는 아픔과 불편 속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대만에 친한파 총통정부가 출범함으로써 양국간 실질관계가 더욱 깊어져 과거의 두터운 우의가 회복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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