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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3월 15일 19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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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서유럽 4개국 순방 정상외교를 통해 그러한 부담이 말끔히 사라졌음을 확인하면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꼈다. 이제 그들은 우리를 같은 둥지, 같은 민주주의 클럽에 들어온 동반자로 환영하고 또 기대를 표시했다.
20세기 세계사의 주역을 맡았던 유럽은 21세기에도 국제사회의 중요한 중심 축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세계화 시대에 국제 관계의 대전제가 되는 상호의존과 선의의 경쟁에서 유럽은 가장 앞서가는 선구자이다. 이제 유럽연합(EU) 15개 국가 사이에는 국경이 희미해지면서 공통의 화폐 유로화를 만들어 통용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유럽의 이러한 움직임은 국제관계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해 주고 있다. 다른 지역의 나라들도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모두의 평화와 번영을 달성하는 가장 확실한 길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유럽을 보면서 동북아시아, 나아가 동아시아에서도 그러한 지역 협력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서유럽 국가들이 역사를 능동적으로 개척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사이에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신뢰는 공통의 가치와 이상, 즉 민주주의에 대한 한결같은 믿음에 터를 잡고 있다. 이제 민주주의는 세계의 보편적 가치로 확산되고 있다. 한 나라의 국제적 위상과 권위도 민주주의에 대한 지도자와 국민의 헌신으로써 평가되기에 이르렀다.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나라만이 세계사를 선도하는 대열에 설 수 있는 것이다.
다행스럽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거듭나고 있는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와 기대가 전에 없이 높아져가고 있다. 특히 유럽 국가들이 한국에 거는 기대는 각별하다. 수세기에 걸친 피의 투쟁을 통해 오늘날의 선진 민주주의를 구가하는 서유럽 사람들은 민주주의 가치를 신봉하는 지도자에 대해 강한 연대감을 갖고 있다. 수십년의 시련을 견디며 민주화에 기여하고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지도자에게 유럽인들이 보여준 환대는 각별한 것이었다. 형식과 실리를 뛰어넘어 한국을 진정한 동반자로서 대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모든 대화에서도 성심성의와 우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 교황청 프랑스 독일 4개국 방문 일정에 대통령을 수행하면서 21세기 들어 한국 정상외교의 첫 해외무대가 서유럽이라는 것이 매우 적절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김대통령의 서구 순방외교는 150억달러의 외자유치를 포함한 세일즈 외교, 베를린 선언을 통한 대북 포용정책의 새로운 전기 마련, 제 3차 서울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를 위한 분위기 조성 등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외교의 기본이 되는 상호존중은 공통의 가치와 인간적 유대 위에 견고하게 다져질 수 있다. 이번 대통령의 유럽 순방 정상외교를 통해 다져진 유럽국가들과의 신뢰와 상호우의는 21세기 국제사회 속에서 나라의 앞날을 능동적으로 개척해 나가려는 우리 외교에 큰 힘이 될 것으로 믿는다. 이런 뜻에서도 우리의 민주주의의 가치를 더욱 더 소중하게 키워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이정빈 (외교통상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