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읽기]MBC '목표달성 토요일'…"이게 공영방송인가"

  • 입력 2000년 3월 13일 19시 25분


MBC 오락 프로의 현주소를 알고 싶거든 3주 전 신설된 ‘목표달성! 토요일’(토 오후6·00)을 보면 된다. ‘목표달성!…’은 몰래카메라를 통한 엿보기와 실소를 자아내는 가학적인 웃음, 그리고 일본 상업방송 류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자칭 ‘공영방송’이라는 MBC의 이미지를 얼마나 심하게 훼손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주력으로 밀고 있는 ‘꼴지 탈출’ 코너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의 모고교 학생 중 바닥권의 성적으로 고민하는 남학생 다섯 명이 3개월 간의 합숙훈련으로 ‘환골탈태’하는 과정을 몰래카메라로 보여주는 코너.

하지만 정작 제작진은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해프닝’에 집중했다. 합숙 훈련 전 사귀던 여자친구와 당분간 연락을 끊겠다고 약속한 학생 중 한 명이 갑자기 다른 친구에게 욕설을 퍼붓고 베개로 머리를 내리치며 험악한 분위기를 만드는 장면은 차라리 애교에 가까웠다. 평소 사용하던 남성 성기를 지칭하는 비속어와 욕설을 지우느라 방송 중 ‘삑∼’ 소리가 연발했다. 게다가 제작진은 그 부분을 부득이 자막으로 처리하느라 화면에는 온통 ‘X나’ ‘야 XXX들아’ 등 ‘암호’에 가까운 자막이 난무했다. “네 입이 아가리면 내 입은 시궁창이냐”고 한 한 학생의 말은 얌전하다고 판단됐는지 여과없이 방송됐다. 게다가 학생들의 학습을 담당한 여자 국어 강사와의 수업 장면은 코너 진행자인 개그맨 김진수까지 동원돼 농담으로 일관했다.‘신인 탈출, 한일대결’ 코너는 한일 양국에서 신인 가수 한 팀씩을 선발에 상대국에 진출시키는 과정을 담았다. 지난해 1년간 일본에서 연수한 개그맨 이경규와 작곡자 겸 MC인 주영훈이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진출을 노리는 신인 여성 트리오 ‘투야’를 돕는 과정을 담았다. 하지만 그룹 ‘S.E.S.’같이 해외진출을 위해 전략적으로 구성된 팀도 수 년 간의 치밀한 매니지먼트와 인맥을 이용해 간신히 일본에 상륙한 것을 볼 때, 이 코너를 통한 ‘투야’의 일본 진출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염경환, 지상열의 무한대결’ 코너는 제작진이 자막 중 ‘무’와 ‘한’ 사이에 ‘식’자를 넣어 ‘무식한 대결’임을 이미 선포했다. 그만큼 상식이하의 내용으로 일관했다.

‘한 해 농사’를 결정짓는 봄개편(4월17일)을 한 달 여 앞둔 요즘 방송사는 프로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존폐 여부를 가리는 작업에 한창이다. 그간 1년 넘게 오락프로에서 재미를 보지 못한 MBC가 봄개편을 앞두고 ‘의욕적’으로 마련 한 것이 이 정도라면 당분간 MBC 오락프로의 부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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