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동철/'金心 팔기' 目不忍見

  • 입력 2000년 3월 13일 19시 25분


민국당의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 ‘활용’ 수법이 눈뜨고 못 볼 지경에 이르렀다.

당지도부가 차례로 상도동을 찾아가 YS에게 지원을 요청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김심(金心·YS의 의중)’의 소재가 민국당이라는 점을 YS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 경남(PK)의 대중집회에서 노골적으로 밝히고 나섰다.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경력을 앞세워 YS의 핵심측근을 자임하는 민국당 김광일(金光一)최고위원이 그 전도사다.

그는 12일 부산에서 열린 민국당 집회에서 “김전대통령이 ‘너희들(민국당 지도부) 중에서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어 자신의 말에 YS의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밝히면서도 “김전대통령이 야당분열 비난을 생각해 공식적으로는 말하지 않는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물론 이 같은 김최고위원의 발언이 그의 말대로 YS와의 ‘사전 협의’에 따라 나왔을 개연성도 없지 않다. 그리고 PK지역에서 의석 확보가 미진할 경우 총선 때마다 명멸했던 군소정당으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는 민국당의 위기감 때문에 PK지역의 정서를 자극하는 이런 발언을 전략적으로 이용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문제는 민국당의 ‘김심 팔기’가 8일 민국당이 공식창당된 뒤 계속 증폭되고 있는데도 YS가 명확한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서 이를 즐기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대목이다. YS의 대변인역을 맡고 있는 한나라당 박종웅(朴鍾雄)의원은 13일 김최고위원의 발언에 대해 “노 코멘트”라며 답변을 피했다. 또 이날 YS와 민국당 김상현(金相賢)최고위원의 회동결과에 대해서도 김최고위원이 “YS가 민국당이 부산지역에서 바람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한 반면 박의원은 “YS는 듣기만 했다”고 밝혔을 뿐이다.

‘간접화법’정치는 현역정치인시절 YS가 즐겨 구사해 재미를 보기도 한 정치술이지만 총선을 꼭 한달 남겨놓은 이 시점에서는 YS도 ‘직접화법’을 통해 태도를 밝히는 게 수순이라고 본다. 대통령을 지낸 국가원로로서 ‘양다리 걸치기식’ 행태를 보이는 것 자체는 수치일 수도 있다. YS는 한때 그를 따르며 아꼈던 일부 인사들 사이에서 “어지러운 총선정국을 피하려 아예 한달 가량 외국에 나가있었던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이 부럽다”는 얘기가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 공천파동 직후 반짝 기세를 올리다 정체국면에 들어선 민국당도 마찬가지다. 민국당이 또 한번의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YS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점은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창당선언문에서 ‘사림(士林)의 개혁세력과 경륜의 보수세력’의 결집체임을 강조했던 민국당으로서도 ‘김심 팔기’만이 살길이라는 식의 행보는 오히려 총선득표전략에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민국당이 자신들의 주장대로 총선 이후 야권의 대안세력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김심 매달리기’가 아니라 ‘홀로서기’가 더욱 시급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PK지역의 민심이 ‘반(反)DJ성향’이 강하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YS의 것으로 통하지만은 않는다는 현실을 민국당 지도부는 똑바로 알아야 한다.

김동철<정치부 차장> eastph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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