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한기흥/뿌리깊은 美 인종차별

  • 입력 2000년 3월 6일 19시 29분


아프리카 기니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흑인 청년 아마두 디알로(22)는 지난해 2월4일 뉴욕에서 경찰관들이 쏜 41발의 총탄을 맞고 숨졌다. 강간범을 추적하던 경찰관 4명이 디알로가 아파트 현관에서 지갑을 꺼내는 것을 권총을 꺼내는 것으로 오판해 그에게 무지막지한 총격을 가했다. 디알로는 무기를 갖고 있지 않았다.

디알로를 죽인 경찰관들이 지난달 25일 뉴욕의 한 법원에서 무죄평결을 받자 요즘 미국에선 흑인을 비롯한 소수 인종들이 연일 시위를 벌이는 등 고질적인 인종차별 논쟁이 재현되고 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4일 “미국의 모든 인종은 디알로가 조용한 백인 동네에 사는 백인 청년이었다면 그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새 천년이 시작됐으나 미국에서 유색인종에 대한 백인들의 편견과 차별은 좀처럼 시정되지 않고 있다.

인종간의 데이트를 금지한 학칙 때문에 최근 대선 정국에서 물의를 빚은 밥 존스대의 경우는 극단적인 사례라고 하더라도 소수인종에 대한 차별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미국 사회 도처에서 여전히 볼 수 있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지는 4일 아시아인들이 고소득과 높은 명문대 진학률에도 불구하고 주류 사회에 진입하지 못한 채 소수인종으로 머물고 있다는 내용의 특집기사를 다루기도 했다.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미국 사회를 비유하는 표현 가운데 ‘샐러드 그릇(salad bowl)’이라는 말이 있다. 각종 채소와 과일이 보기 좋게 섞인 샐러드처럼 여러 인종이 조화를 이룬 사회가 미국이라는 것.

그러나 요즘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종차별을 지켜보노라면 미국의 백인들은 샐러드 그릇 안에서도 ‘흰색 마요네즈’가 중심이기를 바랄 뿐 색깔이 있는 과일과 채소는 하찮게 여기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한기흥기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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