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심규선/아름답게 떠난 무라야마

  • 입력 2000년 3월 5일 21시 22분


일본 사민당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76)전총리가 4일 정계은퇴성명을 발표했다. 그의 은퇴설이 나오자 도이 다카코(土井たか子)사민당 당수가 나서서 “선거를 앞둔 중요한 시점”이라며 은퇴를 말리겠다고 했으나 결국 그의 뜻을 꺾지 못했다.

사민당뿐만 아니다.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자민당 간사장대리도 “무라야마 전총리는 일-조(북한)의원연맹 회장으로서 아직도 할 일이 많다. 재고해 줬으면 좋겠다”며 아쉬워했다.

무라야마 전총리는 자신의 지역구인 오이타(大分)현에서 은퇴연설을 하며 “‘노병은 조용히 사라진다’는 말처럼 소문 없이 물러나고 싶었는데…”라며 자신의 은퇴를 둘러싼 ‘작은 소동’조차 면구스럽다는 뜻을 표했다. 그러면서 그는 “체력도 기력도 한계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정계에는 그보다 나이 많은 의원이 적지 않다. 일본 신문들은 그가 후배에게 길을 터주고 야당과의 선거협력을 순조롭게 하기 위해 스스로 물러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의 선거구에서는 자민당 현직 의원과 제1야당인 민주당의 젊은 후보가 다음 선거 출마를 준비중이다. 그가 출마하면 민주당 후보의 당선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럴 경우 다른 지역구에서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고 사민당 후보를 돕겠다는 ‘선거협력’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무라야마의 결단이 관심을 끄는 것은 그 뿐만이 아니다. 은퇴만 하지 않으면 그는 가만히 앉아서 비례대표로서 의원배지를 달 수 있다. 그는 그마저도 거부했다.

1994년 6월 총리가 된 그는 당의 기존방침과는 달리 “자위대는 합헌”이라는 현실적인 견해를 표시했고 1995년에는 “아시아의 여러 국가에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줬다”는 소위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해 소신 있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할 수만 있으면 ‘구차하게라도’ 정치생명을 연장하려는 일부 한국 정치인들이 그의 퇴장을 가슴속에 되새겼으면 한다.

<심규선 도쿄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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