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 스탠더드]美 '특별검사제' 어디든지 수사

  • 입력 2000년 3월 3일 01시 25분


지난해 초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탄핵 직전의 위기로까지 내몰렸다.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몰아내기 직전의 상황에 몰아넣은 사람은 바로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였다. 스타 특별검사는 각종 스캔들을 5년 동안 끈질기게 조사하며 클린턴을 괴롭혔다. 이렇게 특별검사에게 부여된 막강한 권한의 원천은 바로 특별검사법.

특별검사법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몰고 온 워터게이트 사건이 종결된 뒤인 78년 처음 도입됐다. 물론 이전에도 이미 6건의 사건 수사에 특별검사가 임명된 전례가 있다. 그러나 73년 워터게이트 사건 수사 당시 닉슨대통령이 녹음테이프 제출을 요구한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를 해임하라고 지시했으나 법무부 장관과 차관이 이를 거부해 이들을 한꺼번에 자른 ‘토요일의 대학살’이 일어나자 미국 의회는 유사한 사건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제도를 정식으로 입법화했다.

특별검사법 적용 대상 고위인사는 50명선으로 정부통령, 각료 및 각료급 공직자, 백악관 고위관리, 법무차관 등 법무부 고위관리, 중앙정보국(CIA) 국장 부국장, 국세청장, 대통령 선거운동본부 위원장 및 재정책임자 등이다.

특별검사, 더 정확히 말하면 ‘독립검사’는 일단 임명되면 말 그대로 법무장관이나 대통령으로부터도 독립해 수사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지닌다. 그 누구도 수사와 관련해 정식으로 임명된 특별검사를 간섭할 수 없다. 수사기간과 예산도 구애받지 않는다. 다만 특별검사는 의회에 연례보고서를 제출하고 대법원장에 의해 지명되는 3명의 연방판사로 이뤄진 패널에 최종보고서를 내야 한다. 그리고 예산지원을 받기 위해 6개월에 한번씩 회계국에 지출 내용을 보고한다.

법무장관은 고위공직자의 비리혐의가 포착되면 자신의 권한으로 90일간 예비조사를 할 수 있다. 이 조사결과를 토대로 본격 수사를 벌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면 특별검사 임명을 요청하게 된다. 이처럼 특별검사 임명 과정에서 법무장관의 비중이 큰 것은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법무부의 로비가 작용한 때문. 닉슨이 74년 사임한 뒤 의회에서 78년 이 법이 통과되기까지 4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법무부의 집요한 로비와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혔다는 것이 정설이다.

당시 특별검사의 명칭을 ‘독립검사(Independent Counsel)’로 할지 말 그대로 ‘특별검사(Special Prosecutor)’로 정할 지를 놓고 미국 의원들이 논란을 벌인 끝에 ‘특별검사’라고 하면 아무나 수사해 기소할 수 있는 초법적 기관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독립검사로 낙착을 보았다.

그러나 이 법은 지난해 6월30일을 끝으로 역사의 무대 뒤편으로 사라졌다. 공화 민주 양당이 이 법의 시한을 연장하지 않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자동 폐지된 것. 그러나 이 법의 폐지로 특별검사제도 자체가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나 행정부 고위인사에 대한 수사가 필요할 때 연방검찰청 또는 법무부 소속이 아닌 외부 특별검사(Special Counsel)가 수사를 맡도록 한 규정이 남아 있다.

특별검사법이 폐지된 직후 재닛 리노 법무장관은 외부 특별검사의 권한을 과거보다 상당히 제한하는 내용의 특별검사 규정을 마련했다. 미국 연방규정 제28편 제600장(28 CFR 600)이라는 긴 이름의 새 규정에 따르면 법무장관은 특별검사의 임명과 해임을 결정하는 권한을 독점한다. 법무장관은 특별검사에게 모든 수사 또는 형사소추상의 조치에 대해 설명하도록 요구할 수 있고 그 조치가 법무부 관행 등에 비추어 볼 때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때는 수정토록 요구할 수도 있다.

즉 특별검사가 부적절하게 조사를 확대하거나 조사대상자를 무리하게 기소하려 할 때는 법무장관이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특별검사가 법무부의 긴급보고 지침에 따라 수사 중 발생한 주요 사항을 법무장관에게 통지하도록 의무화했다. 이 때문에 미국 법조계에서는 특별검사를 법무장관에게 사실상 예속시킨 상태에서 특별검사가 권력형 비리를 과연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파업유도’ 사건과 ‘옷로비’ 사건 수사를 위해 한시적으로 특별검사제가 도입됐다. 두 사건 수사를 맡은 특별검사의 공과와 특별검사제의 상설화 등을 놓고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78년 입법된 막강한 권한의 특별검사제가 정치권의 묵시적인 합의 하에 폐지된 것을 놓고 찬반 양론이 엇갈렸다. 이 법의 폐지를 찬성하는 측은 “제4부로 불리던 막강한 특별검사법이 사라짐에 따라 미국은 정상적인 헌법체제로 돌아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스타 특별검사가 처음 클린턴 대통령 부부의 부동산거래 의혹 사건인 ‘화이트워터’ 사건 수사에 나섰다가 혐의가 없자 4000만달러가 넘는 거액의 세금을 써가며 대통령의 성추문을 파고든 것이 특별검사제 비판 여론을 증폭시킨 결정적인 계기였다. 당시 많은 미국인은 클린턴 성추문이 청문회에서 적나라하게 폭로되자 “클린턴뿐만 아니라 스타도 미국을 수치스럽게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미국인은 특별검사제도는 막강한 권한을 지닌 대통령과 행정부 고위관리들을 견제하는 중요한 장치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권력기관 사이의 견제와 균형을 중시하는 미국사회의 가치기준으로는 행정부에 소속된 검사가 자신의 상관인 대통령이나 고위관리를 수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이익의 충돌’로 간주한다. 특히 미국식 대통령제를 모방했으나 실제로는 ‘제왕식 대통령’으로 운영되는 아시아 등 제3세계 국가에서는 권력형 비리의 척결을 위해 이 제도가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미국의 특별검사법(5년 기한)은 83년과 87년 두차례 시한이 연장된 이후 92년 재연장되지 못해 한차례 실효됐다가 다시 94년에 5년간 재연장됐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시 공화당은 이란 콘트라 사건 문제로 재연장을 반대했으나 오히려 클린턴 행정부와 민주당이 재연장에 찬성했다. 결국 특검제는 부메랑이 되어 현직 클린턴대통령에게 다시 날아왔다.

법무부 한부환검찰국장은 “미국에서도 특별검사가 임명돼 수사에 나선 시기는 대부분 국회의석이 여소야대였으며 여대야소 상황에서는 발동된 예가 거의 없다”며 “통제할 수 없는 막강한 권한을 지닌 특별검사제는 미국사회에서 다시 햇빛을 보기 어려울 것 같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미국의 특별검사제는 한때 헌법상 ‘삼권분립의 원칙’에 맞는 제도냐를 놓고 거센 논란을 빚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88년 이란 콘트라사건 특별검사 수사와 관련한 법적인 시비에서 합헌론의 손을 들어줬다.

워싱턴지역 한인변호사협회 회장 겸 한인인권옹호협회장 박상근 변호사는 “스타검사처럼 특별검사가 무제한의 예산과 권한을 남용하면서 신통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비판여론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제도 자체에는 문제가 없고 오히려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변호사는 그러나 “대통령의 비리 등이 재발하지 않으면 지난해 6월 폐지된 특별검사제가 당분간은 부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 의견▼

미국의 특별검사제는 이란 콘트라사건 클린턴대통령 성추문 사건 등 대통령의 권한남용 사건을 조사하다가 현재 폐지됐다. 한국도 이를 모델로 해 ‘파업유도’ 사건과 ‘옷로비’ 사건에 대해 특별검사를 두었다. 미국의 특별검사는 어떠한 권력으로부터도 독립해 권력자 또는 권력기관의 법 위반을 조사하는 권한을 가지며 그 행위의 정당성 여부는 법원의 사법심사만으로 판단된다. 권력기관에 대한 견제장치가 충분하지 못한 현실을 고려할 때 특별검사제는 한국에서도 특정한 사건에서 유용한 제도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정한(법무법인 태평양 노동팀 변호사)

▼美 특별검사제 확산▼

78년 미국 사회에 특별검사제가 도입된 이후 21년간, 4대 정권에 걸쳐 모두 20명의 특별검사가 배출됐다.

특별검사 중 가장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인물은 어쩌면 미국 역사상 ‘마지막 특별검사’로 기록될 지도 모를 케네스 스타. 그는 5년여 동안 4000만 달러의 수사비를 들여 클린턴과 관계된 모든 스캔들을 샅샅이 뒤졌다. 94년 임명 당시의 원래 수사 대상은 아칸소 주지사 시절 발생한 ‘화이트워터’사건. 하지만 스타검사는 백악관 여행국 직원해고 사건인 ‘트래블게이트’와 미연방수사국(FBI)의 주요 인물기록 불법 이용의혹 사건인 ‘파일게이트’ 등으로 꼬리를 물며 수사를 이어가다 급기야 클린턴과 백악관 인턴출신 여직원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추문사건까지 다루게 됐다. 스타검사는 공화당 우파정객들과의 친분과 클린턴에 대한 사감까지 드러내 특별검사의 생명인 중립성을 훼손시켰다는 혹평을 받았다. 클린턴을 탄핵재판에 몰아넣는 데는 성공했지만 스타의 무리한 활동은 특별검사법을 없애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스타검사와 함께 역사에 기록될 특별검사는 이란 콘트라사건을 수사한 로렌스 월시. 그는 무려 7년에 걸쳐 4790만달러(미 회계국 집계)의 예산을 들여 역대 특별검사 사상 최대의 비용, 최장기 수사 기록을 세우며 권부의 비리를 파헤쳤다.

스타검사가 클린턴의 대통령직을 마비시켰다면 월시검사는 80년대 레이건에서 부시로 이어지는 공화당 정권을 거의 무력화시켰다. 이란 콘트라사건은 백악관 비서실장이었던 도널드 리건과 올리버 노스 중령 등이 이란에 무기를 팔아 조성한 자금을 콘트라 반군에 제공한 사건. 월시검사는 92년 대통령 선거 직전 부시가 부통령 시절 이를 보고받았거나 최소한 알고 있었다는 내용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고 결국 부시의 재선에 치명타로 작용했다. 당시 다수당인 공화당은 격분해 5년 시한인 이 법의 재연장을 막음으로써 법안이 2년 동안 사문화 상태에 처해졌다.

초대 특별검사 아서 크리스티를 포함해 초창기 5명의 특검은 단 한 건의 기소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최근 도널드 스몰츠 특별검사가 기소한 마이크 에스피 전 농무장관은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미국 특별검사의 활동이 반드시 성공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최영훈기자>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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