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이수형/법조계를 지키는 사람들

  • 입력 2000년 2월 24일 19시 40분


정치의 계절.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도 ‘정치’가 넘쳐난다.

벌써 50명 가까운 법조인이 공천을 받았다. 무소속과 전국구 후보를 합치면 이번에도 100여명의 법조인이 총선바람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다 보니 법조인 둘 이상만 모이면 정치얘기다. 서초동 변호사들은 “주식 얘기와 정치얘기를 빼면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다.

그렇다고 정치권으로부터 참여 제의와 유혹을 받고있는 법조인이 다 정치바람을 타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총선바람으로부터 법조계를 지키기 위한 대화와 모임도 있다.

지난주 특수부 검사 몇명과 심재륜(沈在淪)전대구고검장이 어울렸던 자리도 그 경우. 이 자리에 참석한 검사들은 “검찰의 어른으로 남아달라”며 정치포기를 요청했다. 심씨가 한나라당으로부터 수십차례 출마요청을 받아왔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는 일. 묵묵히 듣고 있던 심전고검장은 결국 후배들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는 “‘포기’야말로 정말 힘든 ‘선택’”이라고 결단을 내렸다.

지난해 말 옷로비 사건 수사 도중 사표를 냈던 이종왕(李鍾旺)전대검수사기획관도 ‘고향에서 출마하면 무조건 당선된다’는 주변의 말을 일축하고 ‘정치가 없는’ 시골로 여행을 다닌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에다 ‘고시3관왕’으로 상품가치가 높은 이정우(李政祐)변호사도 “나 자신에 대한 정치활동규제법을 만들었다”며 정치 유혹을 거절했다. 또 96년 총선 당시 부당한 선거구획정에 대한 위헌결정을 이끌어냈던 이석연(李石淵)변호사도 정치권 대신 시민단체를 택했고 법조계의 ‘스타’ 박원순(朴元淳)변호사도 흔들림이 없다.

“누가 출마를 안하는지에 대해서도 한번쯤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한 소장검사의 말은 이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정치공해라 불릴 만큼 정치가 과잉인 세상에서 유혹을 뿌리치고 소신을 고집하는 모습은 참으로 신선하고 아름답다.

이수형<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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