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기아 대들보 김영만 "명예회복 맡겨 달라"

  • 입력 2000년 2월 23일 19시 35분


‘사마귀 슈터’가 살아났다.

기아 엔터프라이즈의 슈터 김영만. 그는 동료들로부터 ‘땡만’이라고 통한다. ‘람보’ ‘천재’ ‘마술사’ 등처럼 다른 프로농구 스타들에 붙은 별명과는 좀 다르다. 그만큼 그는 스타이면서도 소박하다.

성격자체가 그는 ‘향토적’이다. 경남 함안이 고향인 그는 ‘농군’의 아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막걸리를 받아오라고 시키자 소년 김영만은 막걸리를 받아오는 도중 다 마셔버리고 논두렁에 누워 잠을 잔 적이 있다. 이게 그동안 그가 저지른 유일한 말썽. 이후 단 한번도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

그는 농구판에서 알아주는 ‘주당’. 하지만 시즌 중에는 맥주한잔도 절대로 마시는 일이 없다. 그만큼 자기자신에 대한 관리가 철저하다.

선수시절 새로운 ‘지평’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 김영기 한국농구연맹(KBL) 부총재가 토종선수 중 첫손가락에 꼽는 선수가 바로 그다.

‘농구 9단’ 허재(삼보 엑써스)도 기량이 가장 뛰어난 선수로 단연 김영만을 꼽는다. 그만큼 기본기가 발군이다. 그의 배번호는 11번. 어린 시절 축구스타 차범근을 좋아해 백넘버를 스스로 11번으로 정했다. 농구를 하지 않았으면 지금 유명한 축구선수가 됐을 거라는 게 그의 주장.

농구를 시작한 이유는 초등학교 시절 농구팀에 들어가면 우유와 빵을 자주 먹을 수 있어서란다.

김영만에게 올시즌은 최악이었다. 일본으로 건너가 수술을 받은 왼쪽무릎이 완전치 않아 시즌 팀이 치른 41게임 중 불과 27게임에만 출전을 했다. 그가 코트를 비우자 기아는 그야말로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시즌 중반 팀 합류 후에도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하던 김영만은 12일 동양 오리온스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린 뒤 제기량을 되찾았다.

플레이오프 진출여부의 관건이던 22일 삼성 썬더스전에서도 양팀 최다인 28득점으로을 국내선수로는 처음으로 통산 3000득점을 돌파하며올리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재빠른 발놀림으로 최고의 수비수로 평가받는 그는 이날 상대팀 슈터 문경은을 11점에 묶었다.

사이드스텝으로도 상대팀 주공격수를 따라갈 수 있어 ‘공의 방향과 상관없이 가장 이상적인 농구를 한다’는 그가 진면목을 보여주긴 올시즌이 처음.

86년 팀창단 후 농구대잔치를 비롯해 프로이후에도 단 한번도 4강에서 탈락한 적이 없는 명문팀 기아.

올시즌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여부가 불투명한 팀의 명예회복 여부는 ‘땡만’ 김영만에게 달려있다.

<전창기자>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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