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라의 미각시대]'미슐렝'에 이름 못오르느니 죽음을…

  • 입력 2000년 2월 10일 19시 53분


일류요리사들의 명예욕은 대단하다. 목숨과도 맞바꿀 정도로.

1960년대 중엽 3월의 어느 날. 음식점 가이드책인 ‘미슐렝’의 책장을 넘기던 프랑스의 요리사 루레의 관자놀이에 힘줄이 섰다. 전년도 미식가들로부터 별 1개의 평가를 받았던 자기 식당을 올해는 명단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미슐렝’ 별 2개를 걸고 음식을 만들던 2년전의 영화는 이제 오간 데 없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끊었다.

‘미슐렝(Michelin)’. 매년 3월 1일 이 책이 발간되면 유럽을 비롯한 미국 일본 등의 서점에는 미식가들이 줄을 선다. 세계 식당에 대한 100여명의 음식평론가 심사위원들의 채점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최고 점수는 별 3개. 맛은 물론이고 분위기 서비스 와인리스트의 수준을 종합채점을 해서 나오는 이 별의 수에 세계 수준의 음식점들은 희비가 엇갈린다. 루레처럼 목숨을 끊는 요리사가 있는가 하면 독일의 한 조그만 마을의 요리사는 어느날 갑자기 손님이 가게를 가득 메운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알아보니 ‘미슐렝’에 자기 식당의 이름이 오른 것을 알았다는 얘기도 있다.

‘하늘의 별 만큼’ 식당이 많은 프랑스 파리에서 별 3개 짜리 식당은 타유방, 랑브로지, 이스페쥐, 뤼카 카르통, 삐에르 간네르, 알렝 뒤까스 등 6곳.

이 식당들의 특징은 대부분 가게 이름이 곧 요리사의 이름이라는 것이다. 이들 6개 식당요리사중 한 명이었던 죠엘 호부숑은 15세에 요리를 시작, 50세가 되던 3년전 은퇴하며 식당을 팔았다. 그는 식당을 팔면서도 식당 안팎을 개조하지 말 것, 자신이 허락한 요리사만 채용할 것 등의 조건을 내걸었다. 그의 뒤를 이은 요리사인 알렝 뒤까스는 현재 별 3개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떠난 뒤에도 끝까지 명예만은 지키려는 요리사들의 일류의식이 오늘날 프랑스요리를 고급화 대중화시켰다. 어제는 이 집에 있던 요리사가 오늘은 저 집에 있는 걸 자주 보게 되는 게 우리나라 직업 요리사들의 세계다. 맛에 혼(魂)을 담을 것인가, 돈에 맛을 담을 것인가?

송희라(요리평론가)hira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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