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나사 풀린 곳 또 없나

  • 입력 2000년 1월 23일 19시 12분


대구 지하철 공사장에서 도시가스가 폭발하는 바람에 등교하던 중학생 등 101명이 목숨을 잃은 게 불과 5년전이다.그저께 이른 아침 또 대구 지하철 2호선 공사장에서 지반이 내려앉는 바람에 버스가 추락해 승객 3명이 숨지는 사고가 났다.이른 시간이라 망정이었지 만약 출근시간이었다면 수십명이 참사 당하는 대형사고가 났을 지도 모른다.생각만 해도 아찔하다.천만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기에는 너무나 개탄스러운 우리의 현실이다.

특히 사고발생 약 2시간 전에 붕괴조짐을 발견한 한 택시운전사의 신고가 있었는데도 적절한 대처가 없었던 점은 안전불감증이 불치병에 이르렀음을 드러낸다.더구나 이 택시운전사는 걱정이 돼 1시간쯤 후 다시 현장으로 가봤더니 여전히 아무런 조치가 없어 또 신고를 했다고 한다.이때라도 신고를 받은 현장사무소와 경찰이 재빨리 교통통제를 했다면 귀중한 생명 3명이 또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5년전 대구 상인동 지하철공사장 폭발사고로 아들을 잃은 한 아버지가 앞으로도 엄청난 사고가 계속 일어날 것 이라고 했다는 말이 근거없는 악담은 아니라고 본다.

사후조치도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사고현장 도로 양쪽에 묻혀있는 가스관을 사고발생 30분이 지나서야 차단했다니 또다시 폭발사고를 빚을뻔 했다.공사안전에 책임 있는 사람들이 일반시민보다 더욱 안전불감증에 빠져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정확한 사고원인은 조사중이지만 이번 역시 건설회사측의 부실시공과 관계당국의 감독소홀 및 위험신고에 대한 늑장대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인재(人災)로 보지 않을 수 없다.

대형사고가 날 때마다 당국은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 고 앵무새처럼 외운다.하지만 우리가 수없이 보아왔듯이 그때 뿐이라는 것이 이번 사고에서도 재입증됐다.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참담하고 부끄러운 대형사고를 앞으로도 얼마나 더 겪어야 할 것인지 암담하기만 하다.안전불감증을 치유하지 못하는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사고에 대한 철저한 문책이 뒤따르지 않았다는 점을 우선 지적할 수 있다.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문책은 약한 현장관계자 몇명을 법적으로 희생 시키는데 그친다.그것도 재판과정으로 넘어가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질만하면 하나 둘씩 슬그머니 빠져나가고 마는 것이 보통이다.이래 가지고는 대형사고의 악순환에서 헤어날 수 없다.

총선을 앞두고 요즘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사 풀린 모습이 드러나는 것 같다. 이런 분위기에서 혹시나 대형사고가 잇따라 발생하지 않을지 우려된다.이번 사고를 범상히 보아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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