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꼴불견' 시-구청 게시판…市政홍보, 市長홍보?

  • 입력 2000년 1월 21일 20시 12분


“‘시정(市政)홍보게시판’보다는 차라리 ‘시장(市長)홍보게시판’이라고 이름 붙이는 게 낫지 않을까요.”

21일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시청 본관 정문 옆에 설치된 시정홍보게시판 앞. 게시물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김모씨(45·서울 구로구 고척동)는 실망한 듯 고개를 저었다.

길이 20m 남짓한 게시판에 붙어 있는 대부분의 사진이 고건(高建)시장의 활동을 홍보하는 내용이었기 때문. 대형사진 12장 가운데 9장이 고시장과 관련된 것이었다. 한 패널에는 지난해 10월 국제행사에 참석한 고시장의 모습이 거의 실물 크기로 담겨 있다.

▼단체장 치적 내용 많아▼

서울시청 게시판만 그런 게 아니다. 전국의 자치단체 홍보게시판은 ‘단체장 홍보판’이나 다름없다.

서울 종로구청 정문 앞 게시판의 사진 6장에는 모두 구청장이 등장한다. 서초구청의 경우도 1층 홍보게시판에 붙어있는 사진 12장 가운데 10장에 구청장이 등장한다.

지방도 마찬가지. 전북 전주시 전북도청 현관 왼쪽 벽에는 유종근(柳鍾根)지사가 어린이들과 함께 찍은 대형 컬러사진이 걸려 있다.

또 오른쪽 벽면에는 유지사가 외국 국가원수들과 찍은 사진, 2층으로 통하는 계단 벽에는 외국에서 연설하는 내용의 대형 컬러사진 등이 걸려 있다.

전남도의 경우 도청 후관 1층 홍보게시판에는 허경만(許京萬)지사의 신년 인사회 참석 모습 등이 담긴 사진 18장이 걸려 있다.

이같은 대형 사진을 제작하는데 드는 비용은 1장에 최소 3만원에서 최고 50만원.

서울의 한 구청 공보 관계자는 “주요 행사 때마다 구청장의 사진을 잘 찍어 게시판에 걸어야 하기 때문에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생활정보 안내는 소홀▼

행정개혁시민연합 조석준(趙錫俊·전 서울대 행정대학원장)공동대표는 “단체장의 치적을 내세우는 ‘게시판 행정’은 권위주의적인 행정관행을 답습하는 것”이라며 “그런 홍보에 예산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게시판을 없애거나 아니면 실제 시민에게 도움이 될만한 정보물을 게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경달기자> d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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