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320)

  • 입력 2000년 1월 10일 19시 57분


내가 이 선생 집으로 갔더니 북쪽 젊은이는 이미 그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일어난 뒤라서 긴장한 것 같지는 않았어요. 이 선생이 나에게 그를 소개했어요. 나는 어린 막내 동생을 보는 심정이었지요. 영수는 이 선생의 골덴 바지와 쑥색 쉐터를 입고 있었지요. 나는 사가지고 간 브뢰첸과 햄이며 치즈를 식탁 위에 풀어 놓으면서 그에게 친근하게 보이느라고 한마디 농담을 했지요.

뿔이 없네요.

예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그 애에게 나는 두 손가락을 세워서 머리 위로 쳐들어 보이며 말했어요.

뿔, 몰라요? 남에서는 북쪽 사람이 뿔이 났다고 농담하는데.

우리두 남조선 사람은 모두 특무라구 배웠시오.

이 선생이 나에게 들으라는 듯이 말했어요.

조 군은 동베를린으로 돌아가지 않겠대.

나는 영수에게 말을 걸었어요.

돌아가지 않으면 뭘 할 건데요?

독일에서 살아볼라구요.

독일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기럼 제삼국으로 가야지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을텐데. 젤 먼저 어머니를 못만날 거예요.

그의 등 뒤에 주방쪽에 서있던 이 선생이 나에게 눈짓과 손짓으로 말하지 말라는 시늉을 했어요. 그는 접시를 식탁 위에 늘어 놓으며 영수에게 말했어요.

자자 그런 거는 천천히 결정해두 늦지 않아. 우리 밥 먹구 백화점 구경 가자.

이 선생과 나는 영수를 데리고 그날 오후까지 백화점과 대형 유통센터를 돌아다녔습니다. 나는 돌아 다니는 틈틈이 이 선생에게 물었어요.

도대체 어떻게 할 작정이지요?

그랬더니 그는 간단하게 답하는 거예요.

돌려보내야지.

뭣하러 그래?

아니면, 나더러 독일 이민국이나 우리 영사관에 신고라두 하란 말야?

그냥 놔두죠. 자기 의지대로 결정하도록.

이 선생이 말했어요.

비가 많이 와서 둑이 터졌어. 온갖 잡동사니가 그 터진 물꼬를 따라 다른 못으로 흘러왔는데 어린 물고기두 휩쓸려 내려왔어. 환경도 전혀 다른 곳이고 큰 물고기도 많아서 살아 나가기가 쉽지 않을 거요.

오히려 먹이두 많구 수초두 많아서 살기 좋다고 결정했는지두 모르잖아요. 사는 건 어디서나 모험이라구요.

당신두 그랬잖아, 저 앤 어머니두 못 만나게 된다며? 조 군은 이제 겨우 스무살이야. 말하자면 무작정 상경 같은 경우지.

이 선생은 영수에게 모자가 달린 두툼한 윈드자켓과 속옷이며 양말도 사주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백화점 안은 온갖 장식과 불빛으로 궁전처럼 보였어요. 붉은 옷에 흰 수염을 날리며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가는 산타클로스의 장식과 구내에서 같은 복장과 모습으로 장난감 코너에 섰던 사내를 보고 영수가 이 선생에게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이 참으로 간단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이희수씨가 뭐랬는지 알아요? 글쎄 그건 백화점 도깨비라구 말했어요. 집으로 돌아가서 함께 저녁을 먹고 나서 이 선생이 영수에게 말을 꺼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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