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구치소가 이런 곳인줄은"

  • 입력 2000년 1월 7일 19시 53분


옷로비 의혹 사건과 관련해 구속됐다가 그저께 보석으로 풀려난 김태정(金泰政)전법무장관의 얘기가 화제다. 그는 서울구치소 문을 나서면서 “억울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말했다는 보도다. 그는 수감된 지 꼭 한달 만에 나왔다. 짧은 수감생활이었음에도 많은 심경의 변화를 겪은 느낌을 준다.

그는 ‘왜 남들이 나를 미워하는가’에 대해 생각한 끝에 ‘내탓’으로 결론을 내렸다는 보도도 있었다. 출소하면서는 “나를 여기까지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그의 법적 혐의에 대한 유죄 여부는 앞으로 법원이 가릴 문제다. 유무죄를 떠나 이런 말들이 세상을 향한 수사(修辭)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면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인생의 큰 고비를 좋은 기회로 맞아들인 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김전장관의 말 가운데 특히 관심을 끄는 대목은 ‘구치소의 진실’에 관한 얘기다. 그는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구치소가 이런 곳인 줄은 미처 몰랐다. 진작 알았더라면 장관시절 교도행정을 좀 더 잘했을 것”이라고 측근들에게 토로했다고 한다. 구치소가 ‘인권의 사각지대’임을 비로소 몸소 체험했다는 말로 들린다. 많은 재소자들이 변호인도 없이 재판을 받고 있었으며 억울하게 수감된 사람도 많다는 데에 놀랐다는 것이다. 정말 그의 말대로 법무장관이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다면 교도행정의 많은 문제점들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법무장관의 업무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분야로는 검찰행정과 교도행정이 꼽힌다. 그러나 검찰행정은 검찰총장이 따로 있기 때문에 법무장관은 제2선에 머무는 데 비해 교도행정 분야에선 법무장관이 명실상부한 최고 책임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검사출신 법무장관들은 교도행정 분야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었다. 김전장관의 말은 바로 이 점을 실토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최근 교도행정 분야에서도 조금씩 변화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오명은 여전하다.

그러나 ‘구치소의 진실’은 교도행정만의 문제가 아니다. 검찰의 공정한 수사와 인권보호 문제, 돈 없는 사람들의 변호받을 권리 등이 얽힌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임에 틀림없다. 국선변호와 무료변론 문제의 경우 최근 들어 정부와 변호사단체 등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반면 검찰수사와 인권문제는 좀처럼 개선되는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김전장관의 말은 뒤늦은 자탄인 동시에 우리 인권의 현주소가 어디에 있는지를 새삼스럽게 생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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