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종훈/和合과 相生의 새천년을 맞자

  • 입력 1999년 12월 30일 19시 22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20세기를 마감하는 송년 특별담화에서 범법자들에 대한 은사권(恩赦權)행사를 천명했다. 담화에서 지적된 것처럼 지금 우리는 뿌리깊은 지역갈등과 부정부패, 이기주의, 그리고 정치적 대립과 혼란의 굴레에 발목이 잡혀 있다. 그러한 굴레를 벗어나, 모두가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새천년의 자유선언(自由宣言)으로서 형사법상 규정에 의한 가석방과 가출소, 보호관찰의 해제 등의 조치와 아울러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인 사면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特赦때 일반인 소외

김대통령의 이러한 선언을 원칙적으로 환영한다.

그러나 사면권 행사가 이 땅의 최고통치권자가 행한 세기말 선언일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에 대하여는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첫째, 이 사회가 아직도 대통령의 은사권에 의해 통치되고 거기에 일희일비할 정도로 후진적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과거 사면 감형 복권 가석방 형집행정지 등 은사권이 정적(政敵)에 대한 회유, 압박수단으로, 또 자신과 정치적 이해를 같이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답으로 남용됐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용가치만 있다면, 심지어 불과 며칠 전에 하급심에서 유죄 선고가 된 사람에 대해 어제 상소 취하를 종용해 형을 확정시킨 다음 오늘 특별사면을 해준 적도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사면 복권하면, 우리는 3·1절이나 광복절, 아니면 석가탄신일이나 성탄절을 떠올리게 되고, 언론은 그때마다 이런 저런 범법(犯法) 정치인들이 포함되는지 여부에만 관심을 갖는다. 사소한 실수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대다수 사람들은 여전히 그러한 은총과 관심에서 소외되었고, 박탈감에 시달렸다.

국민 모두에게 평등하게 은총이 돌아가는 일반사면은 7차례의 일반사면령이 전부였고, 감형령과 복권령도 3차례와 4차례뿐이었다. 일반사면은 특정범죄를 지정해서 거기에 해당하는 모든 범죄인들에 대하여 형선고의 효과를 전부 또는 일부 소멸시키거나 공소권을 소멸시키는 것으로서,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러한 일반사면은 정부수립직후와 5·16후 몇차례에 걸쳐 대대적으로 실시되었을 뿐이고 근래에는 81년 공무원에 대한 징계사면, 95년 행정법규 위반자에 대한 사면과 공무원에 대한 징계사면이 있었을 뿐이다. 사면이라는 이야기를 1년에도 몇번씩 듣는 것 같지만, 그것은 이른바 특별사면으로 국민 모두에게 평등하게 혜택이 돌아가는 경우는 아니었다. 뒤집어 말하면 특정인에 대한 표적 사면이 주류를 이뤘다.

새천년을 열면서 행하는 은사권 행사에는 그런 오해와 폐단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몇가지 제안을 한다.

◆모두가 함께 웃어야

첫째, 모두에게 평등하게 혜택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 그런 방법으로 일반사면을 권고한다. 이제 한번 정도는 과실범 등 형사범을 포함해서 일반사면을 할 때도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형벌권을 행사한 사법부를 포함한 각계 각층의 의견을 충분하게 수렴함으로써 국민적 동의를 얻어내야 한다. 은사권 행사가 오히려 국민화합을 저해하고 반목과 질시를 낳는 경우가 많았던 점에 대한 반성적 고려에서다.

셋째, 정치적 고려나 계산에 의한 은사권 행사를 배제해야 함은 긴 말을 요하지 않는다. 이는 은사권이 갖고 있는 내재적인 한계이고, 그럴 경우 발생하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하여 대화합 조치가 빛이 바랠 수 있고 주객이 전도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필자는 평소 대통령의 은사권 행사에 대해 무척 비판적이었다. 그러한 소신을 접어두고 대통령의 송년 특별담화를 환영하는 이유는 새천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는 지난 세기의 잘못에 대한 용서와 대화합 조치가 있어야 하고 이번 조치가 위와 같은 전제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지난 한세기 동안 이 땅에 수없이 많은 사람이 살았지만 오직 현재의 우리들만이 20세기와 21세기를 함께 공유하고 있다. 이것이 어디 보통 인연인가. 용서받을 자격이 갖추어진 모든 사람에게 진정한 용서와 함께 상생(相生)의 기회를 주자. 그리고 용서받는 자는 용서한 자에 대해 감사하고 보답할 각오를 가져야 한다.

김종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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