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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12월 10일 19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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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일을 진행하다 보니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2000년과 향후 10년 사이에 우리 사회에 필요한 주제와 쟁점을 찾고 역량있는 지식인 두 사람을 선정하는 일은 힘든 일이었다. 더 큰 어려움은 논쟁과 토론을 밀도 있고 생산적이고 아름답게 펼칠 수 있는 논쟁 문화를 어떻게 연출할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책과 언론, 방송과 사이버 공간으로 이어지는 논쟁과 토론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모범으로 삼을 만한 사례가 국내에 너무 취약해 새삼 우리의 토론 문화를 돌아보게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시공간적인 거리감이 갈수록 좁아지면서 논쟁과 토론의 문화도 달라지고 있다. 정치 청문회가 생중계되고 외국 석학들의 대담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언론에 등장하고 각종 현안을 놓고 TV와 라디오에서 공개 토론이 벌어진다. 최근에는 언론과 방송에 앞서 사이버 공간에서 수만명, 수십만명의 사용자들이 자기 의견을 올리면서 여론 형성에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고 있다.
경험의 폭이 넓어지고 정보의 수집도 쉬워지고 표현의 방식도 변화되면서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거나 상대방을 반박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외국의 사례와 경험을 드는 것도 일상화했고 정치 논쟁이든 학술 논쟁이든 상대방의 이력 개성 습관은 물론 어제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까지 거론되기도 한다. 논거 내용뿐만 아니라 그 내용을 표현하는 글쓰기, 언변, 손짓과 몸짓에 신경쓰고 인터넷 이메일이 등장하면서 화면상의 글쓰기에 언변과 손짓 몸짓 모두를 담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논쟁과 토론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기술과 환경 변화에 따르는 기술력의 문제보다도 어떻게 하면 논쟁이 보다 건강하고 생산적인 장으로 성숙해갈 수 있을까라는 기초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물리적인 세싸움과 동원력에 기초한 군사문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완장 문화, 누구 편인가만을 가르는 색깔 문화, 대중의 관심사와 틈새를 악용하는 상업 문화, 활자의 진지함과 대담의 예의를 저버린 사이버 문화가 논쟁의 주체들은 물론이고 논쟁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왜곡과 상처를 주고 있음을 종종 목격한다. 논쟁은 하나의 싸움이다. 그러나 모든 싸움의 목적이 이기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물론 이기기 위한 논쟁, 결정을 내려야 할 논쟁도 있지만 이때도 그 나름의 질서와 예의가 있어야 한다. 거시적인 담론보다는 미시적인 담론들이 등장한 90년대의 논쟁과 토론들은 사실 이기기 위한 논쟁보다 서로에게 생산적인 계기를 제공해주는 성격의 논쟁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아직도 이전의 싸움판에서 직간접적으로 체득한 버릇과 습성이 걸러지지 않은 채로 드러내고 있음을 확인하곤 한다.
2000년 논쟁에서는 새로운 주체들의 등장을 기대해본다. 자신의 주장을 멋지게 설득하는 모습, 때론 멋지게 설득당하는 아름다운 표정, 맞수의 존재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논쟁 후의 악수 장면을 보고 싶다. 아울러 논쟁과 토론의 문화를 이끌 새로운 연출자들의 등장과 모범적인 사례들이 우리 사회에서 자주 발견되기를 기대해본다.
김학원〈도서출판 푸른숲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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