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나는 세상]소년소녀가장-노인위한 '참사랑 10년'

  • 입력 1999년 12월 3일 19시 15분


환갑을 눈앞에 둔 김윤철(金潤哲·59·서울 관악구 신림동)씨는 젊을 때보다 요즘 더 바쁘다. 새벽 5시면 일어나 잠시 배드민턴으로 몸을 푼 뒤 곧바로 독거노인(獨居老人)들과 소년소녀 가장들을 돌보는 것으로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혹시 병이 나지는 않았을까. 오늘 굶지는 않았을까.”

김씨가 돌보는 소년소녀 가장은 15명, 홀로 사는 노인도 10명이나 된다. 모두 관할구청에서 추천받거나 직접 찾아낸 ‘어려운 이웃’들이다.

그는 이들에게 매달 5만∼10만원씩을 전달한다. 생활비로 쓰기엔 턱없이 모자라는 금액이지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하는 생각에서다.

◆성금 1억여원 기탁

신문에 어려운 사람의 사연이 소개되면 어김없이 금일봉을 보낸다. 10년전부터는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주라며 동아꿈나무재단에 성금을 수시로 기탁해 왔다. 김씨가 최근까지 보내온 성금은 모두 91차례에 걸쳐 1억1930만원.

김씨가 매달 이런 식으로 이웃들에게 보내는 성금은 500여만원. 1000여만원의 김씨 수입 가운데 절반은 불우한 이웃의 몫인 셈이다.

“젊었을 때의 다짐, 이제야 실천하는 셈이에요.”

김씨는 대구 달성군 유가면의 한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등록금이 없어 몇차례나 인근 고등학교를 전전하며 간신히 학업을 마친 뒤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을 때 밑천이라고는 겨우 쌀 두가마니 값. 어머니가 ‘금싸라기’같은 논 반마지기를 팔아 손에 쥐어준 돈이었다.

그는 서울 동작구 노량진시장에 작은 옷가게를 차려놓고 밤낮으로 일했다. 고달픈 타향살이였지만 춥고 배고프고 못 배운 한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각오, 오직 그것 하나만을 위해 살았다.

◆수입절반 이웃 쾌척

당시 다른 소원이 하나 더 있었다면 그것은 50세가 될 때 남을 도울 수 있을 정도의 재산을 모으는 것.

“조금이라도 가진 게 있으면 어려운 이들에게 베푸는 게 사람된 도리죠. 내가 고생했으니 가진 것 없는 이들의 고달픔은 누구보다 잘 알아요.”

90년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됐을 때 김씨는 스스로 자신에게 한 약속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많은 재산은 아니었지만 남을 도울 만큼은 됐다고 판단한데다 욕심은 부릴수록 더욱 커져 끝내 남의 어려움을 외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남은 인생 봉사위해"

신문 지상에 소개된 불우한 이웃들에게 남몰래 성금을 보냈고 서울 관악구 복지후원회 회장을 맡아 소년소녀 가장과 독거노인을 위한 이웃돕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또 이때부터 동아꿈나무재단에도 성금을 보냈다. 어느 단체보다도 성의껏 불우학생들을 위해 성금을 쓸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이같은 선행으로 지난해 6월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수입의 절반과 생활의 거의 전부를 이웃을 위해 쓰고 있지만 요즘 김씨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뿌듯하다.

“남을 돕는 게 결코 일방적인 관계는 아니에요. 돕다 보면 돕는 이의 마음도 점점 평안해지고 넓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남은 인생과 재산도 이웃에 대한 봉사활동에 모두 쏟아붓겠다는 김씨가 일관되게 펴는 ‘봉사론’이다.

〈이헌진기자〉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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