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용정/21세기 국가생존전략은

  • 입력 1999년 11월 23일 18시 51분


앞으로 한달 남짓이면 새해가 열린다. 새 세기(世紀)가 시작된다. 그리고 아직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1000년을 맞이하게 된다.

21세기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인터넷과 디지털이 주도하는 ‘뉴 이코노미’의 기본틀은 지식 정보화에 토대를 둔 지식기반경제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지식기반경제는 거시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지식과 정보가 노동과 자본을 대체하는 핵심 생산요소로 등장하면서 무한한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는 경제다. 지식기반경제는 지금까지의 경제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정부운영과 기업경영 원리 또한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지식위주 무한 경쟁

물론 이전에도 지식은 경제발전의 핵심요소였으나 정보통신기술혁명은 지식의 효율적 생산과 유통을 가속화함으로써 경제활동의 세계화와 경쟁의 가열화를 촉진시키고 있다. 경쟁의 내용 또한 ‘비용경쟁’ ‘품질경쟁’을 넘어 ‘무한경쟁’ ‘시간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바야흐로 세계는 급변하고 있다. 앞으로 전개될 사회는 지금까지의 산업사회, 정보화사회가 더욱 고도화한 사회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문명의 도래가 될 것이라는 데 미래전문가들은 의견을 같이 한다. 그같은 문명사적 대전환의 와중에서 각국의 기업 금융 정부 등 경제주체들은 지속적인 발전을 이끌어갈 지식을 체계적으로 생산하고 분배 활용하기 위한 기술혁신시스템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20세기 전지구적 단일시장 구축과 ‘미국시스템의 글로벌 스탠더드화’에 성공한 미국은 21세기에도 ‘팍스 아메리카나’세계질서 유지를 위한 전략에 몰두하고 있다. 그들의 최대 관심은 최강의 군사력 유지와 지식화 정보화를 통한 세계경제의 지속적인 지배다.

일본은 국가운영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어 다음 세기 세계경제의 새로운 강자로 또 다시 오르기 위한 ‘밀레니엄 프로젝트’구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영국 또한 국가경쟁력 제고가 새로운 화두로 등장한지 오래며 프랑스는 문화와 예술만이 아닌 산업과 첨단과학기술분야에서도 1등국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와 경쟁상대인 중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네덜란드 캐나다 등도 지식기반사회로의 전환과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 등 21세기 국가비전과 생존전략을 수립해 놓고 이를 실천에 옮겨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우리에게 과연 21세기 국가생존전략이 있는가. 어디를 둘러보아도 미래를 착실하게 준비해가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정치권은 내년 총선을 의식한 당파적 이해다툼과 시덥잖은 폭로 고발 고소로 나날을 지새는 끝없는 정쟁을 이어가면서 국가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政爭등 국력 낭비

개혁을 이끈다는 집단들은 당장 가시적 성과에만 이끌린 나머지 축소지향적 구조조정에나 매달려 있다. 기업 또한 새로운 지식의 창출과 활용자로서의 역할과 기업조직의 분산구조, 외부 경제주체들과의 전략적 제휴 필요성 등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2년이 지났으나 기업 금융 노동 공공부문 등의 개혁작업은 여전히 미완이다. 고비용 저효율의 취약한 산업구조와 경쟁력이 경제위기의 근본원인이었다면 기본적인 상황은 IMF 이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세계화의 도전에 대한 응전과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의 부작용인 자본의 무한질주, 인간성 상실, 사회 양극화 등의 위험성에 대한 대안체제도 논의수준에 머물러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IMF관리체제 이후 한국사회의 비전과 장기청사진이 아직도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미래비전이 막연하다 보니 종합적이고 일관된 전략과 실효성 있는 정책이 나올 수 없다. 그 결과 경제주체들은 정부의 경제정책과 개혁프로그램에 수동적으로 대응하거나 저항을 시도한다.

IMF관리체제는 우리에게 혹독한 시련과 함께 새로운 국가사회상을 정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주었다. 그런데도 그같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다. 정부가 뒤늦게 ‘지식기반경제발전을 위한 종합계획’과 ‘새천년의 국가비전과 전략’을 마련중에 있다지만 그것이 구체적 정책프로그램으로 다듬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리의 비전과 전략은 늘 정치적 구호였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김용정〈논설위원〉yjeong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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