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경찰청장의 '위험한 발상'

  • 입력 1999년 11월 21일 19시 17분


‘인샬라’는 아랍어로 ‘신의 뜻대로’를 의미한다. 이슬람 사람들은 이 말을 종종 ‘예’나 ‘아니오’ 대신 사용하기 때문에 외국 무역업자들에게는 무척 곤혹스러운 말이 된다. 가령 ‘몇월 며칠까지 물건을 보내달라’고 요청하면 그들의 대답은 ‘인샬라’다. 좋게 해석하면 최선을 다한 다음 신의 뜻을 기다리겠다는 것이지만 반대 입장에서는 약속을 지킨다는 건지 만다는 건지 애가 탈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도 ‘코리안 타임’이란 말이 있다. 약속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것을 꼬집는 말이다.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현상은 항공편이나 식당 공연장 등에 예약만 해놓고 나타나지 않는 ‘부도율’이 높은 데서도 볼 수 있다.

▽시간 약속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제도나 사회적 룰의 예측 가능성이다. 최근에도 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각종 제도를 뒤죽박죽 바꾸는 통에 당사자들이 당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마땅하지만 나름대로 절차를 존중하고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최근 불거져나온 경찰 승진시험 개선을 둘러싼 소동이다.

▽지난주 새로 취임한 이무영 경찰청장의 소신은 현행 승진시험이 ‘일’보다는 ‘공부’를 잘하는 경찰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어 불합리하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내년 1월 승진시험부터 시험과목을 형법 등 법률 위주에서 실무 위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무 분야의 참고서와 문제집은 신임 청장이 직접 펴낸 것밖에 없으며 그마나 절판되어 시중에서 구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이 때문에 일선 경찰관들로부터 여러가지 불평과 비난의 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문제는 절차와 과정이다. 시험을 코앞에 두고 시험과목을 변경하는 것은 이런 관점에선 위험한 발상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이 있다.

〈홍찬식 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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