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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11월 18일 20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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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싫어하는 말과 좋아하는 말은 간단해요. ‘마네킹 같다’면 엄청난 욕이자 재작업을 의미하죠. ‘배우 따로 필요없다’면 합격 사인이죠.”
영화 ‘텔 미 썸딩’에서 특수분장을 담당한 분장업체 ‘메이지’(Mage)의 대표 신재호씨(34). 촬영 현장에서 그만큼 예민해지는 사람도 드물다. 말 한 마디에 몇 개월간 작업한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내려지기 때문이다.
‘텔 미…’의 스릴러로서의 평가는 엇갈리지만 ‘하드 고어(진한 핏덩어리가 나오는 영화)’로서의 평가는 좋은 편. 이는 상당 부분 인조 사체를 실물처럼 만들어낸 그의 몫이다.
도입부에서 사체를 절단하는 장면은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일부 삭제 요구를 받았을 정도로 완성도가 뛰어났다.
▼ 특수 실리콘 사용 ▼
그는 일본의 특수분장업체인 ‘비행선 예술공방’과 함께 극 중 등장하는 토막 시체 4구 등 7구의 인조 사체를 제작했다. 흥미로운 것은 주요 장면에 등장하는 사체들이 대부분 ‘일제’가 아닌 ‘국산’이라는 점이다.
4월 주인공 조형사 역을 맡은 한석규는 순전히 자신의 두상을 만들기 위해 일본까지 방문해 얼굴의 본을 뜨는 수고를 했지만 너무 닮지 않아 사용하지 못했다. 결국 신씨가 다시 제작했다. 피부의 질감은 물론 보송보송한 솜털과 미세한 잔주름, 땀구멍까지 드러나 ‘오싹하다’는 제작진의 평가를 받았다.
3구의 인조 시체와 한석규의 두상을 만드는데 50∼60㎏의 특수 실리콘을 사용했다.
▼ 머리칼 한올한올 심어 ▼
그의 작업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얼굴까지 덮는 ‘대머리 가발’을 씌운 뒤 마사지 팩처럼 실리콘을 안면에 바른다. 석고 작업에 이어 실리콘으로 다시 틀을 만든 뒤 피부색을 내고 눈썹과 머리카락을 한올한올 ‘심는다’.
88년부터 특수분장을 해온 그는 이 분야가 스턴트맨만큼 연기자에게 필요한 존재로 변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 12월 개봉될 ‘해피 엔드’의 보라(전도연 분)는 최근 남편(최민식 분)에게 대신 죽을 대역을 만들었다.
오죽하면 춘향이도 ‘SOS’ 신호를 보냈을까. 내년 초 개봉될 영화 ‘춘향뎐’에는 절개를 지키는 춘향이가 동헌에서 매 맞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때 몽둥이가 부러질 정도로 매를 맞아야 하는데 매를 직접 맞을 수는 없어 춘향이 인조다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과거에 비해 특수분장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투자가 부족합니다. CF 작업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영화 쪽에 투자하는 형편이죠. A급 할리우드 영화에는 못미치지만 B급 저예산 영화에서는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해 외국 시장을 두드릴 계획입니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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