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李種南감사원장의 '첫 시험대'

  • 입력 1999년 10월 12일 18시 42분


11일 열린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대체로 두 가지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나는 감사원이 ‘약한 곳’에는 세지만 청와대 국가정보원 국세청 검찰 경찰 등 힘있는 권력기관에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권력 핵심부의 눈치만 살핀다는 ‘질책’이다. 다른 하나는 현안인 도청―감청 문제에 감사원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요구다.

이종남(李種南)감사원장은 ‘옷로비’사건 내사(內査) 등으로 물의를 빚은 청와대 사직동팀에 대해 “내년 경찰청 일반감사에서 예산집행과 운영실태에 대한 감사와 직원 직무감찰을 실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일반감사로 그간의 물의와 국민적 의혹이 해소될지 의문이다. 권력 핵심부의 눈치를 살핀다는 ‘질책’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시간을 늦추지 말고 특별감사에 나서 사직동팀 운영의 법적 근거부터 밝혀야 한다고 본다.

감사원은 법률상 대통령 소속기관이지만 권력의 간섭이나 지시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국가 최고 사정기관이다. 이런 감사원이 ‘정권 편향성’을 보인다면 감사원의 역할을 기대하기는커녕 그 존재 이유조차 찾기 어렵다고 할 것이다.

한승헌(韓勝憲)전임 감사원장은 감사원을 ‘공직사회의 시어머니’에 비유하면서 “며느리의 잘못을 꾸짖어야 하지만 때로는 억울한 점을 감싸주기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감사원의 역할이 사후 처벌보다는 사전 예방적인 지도성 감사로 옮겨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른바 ‘약한 곳’에 대한 감사의 경우에는 옳은 지적이다. 그러나 ‘힘있는 권력기관’에는 보다 엄정하고 철저한 감사가 요구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권력층 고위층의 부정 부패와 탈법, 권력기관의 권력 남용, 도덕적 해이 등이 여전한 만큼 감사원이 이를 외면하거나 적당히 넘기려 해선 안된다.

이감사원장은 도청―감청 문제에 대해 빠른 시일 내의 특별감사 실시를 약속했다. 감사원은 그 대상기관이 국정원이든 검경이든 편법과 불법사례를 철저히 밝혀내 도청 감청을 근절시키겠다는 국가 차원의 의지를 보여야 한다. 행여 ‘정부의 해명’을 듣는 수준의 형식적인 감사로 ‘면죄부’만 주었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면 감사를 안하느니만 못할 것이다.

5,6공 시절 검찰간부와 검찰총장 법무장관을 지낸 이감사원장은 ‘국민의 정부’ 감사원장답게 부당한 외압에 굴절되지 말고 소신 있는 감사행정을 펴나갈 것을 기대한다. 그렇다고 감사원이 ‘자기 홍보’부터 앞세워선 안된다.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는 가운데 위상을 높여야 한다. 이종남감사원장은 이제 ‘첫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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