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경매에 부쳐진 ‘재능’

  • 입력 1999년 9월 1일 18시 23분


20세기초만 해도 서구에서는 ‘천재는 일찍 죽는다’는 말이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 생물학적으로 돌연변이는 다른 일반 개체에 비해 생명이 훨씬 짧다. 천재도 돌연변이에 해당하므로 마찬가지 운명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당시 학자들의 생각이었다. 또 천재는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태이며 사회와는 단절되거나 소외된 삶을 사는 것으로 여겨졌다. 쉽게 머리에 떠오르는 예가 35세의 젊은 나이에 타계한 천재음악가 모차르트다.

▽1959년 미국의 교육학자 터만은 IQ 140이상의 천재 1500여명을 분석한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그에 따르면 천재들은 수명이 짧지도 않을 뿐더러 사회생활에 일반인보다 훨씬 잘 적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까지의 ‘가설’이 근거없다는 게 입증됐다. 이후 천재 및 재능에 대한 연구는 급진전되어 왔다.

▽최근 연구결과는 스스로 ‘천재’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생각해온 사람들까지 귀를 솔깃하게 한다. 천재란 IQ가 매우 높은 사람 중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재능 개념의 확대는 급격한 사회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사회가 복잡 다양해지면서 여러 재능들이 필요해진 탓이다. 재능은 조기발굴과 교육 등 사회적 토양이 갖춰져야 꽃필 수 있다는 점에서 재능을 보유한 사람의 것만은 아니다.

▽지진피해를 본 터키를 돕기 위한 운동이 확산되면서 모금아이디어의 하나로 유명 인사들의 ‘재능’을 경매에 부친다는 소식이다. 기꺼이 동참의사를 밝힌 유명인 가운데 이수성 전 국무총리는 강연을, 방송인 박찬숙씨는 사회를, 소설가 김주영씨는 문학강좌를 해주고 그 대가를 받아 성금으로 기탁하게 된다. 축구선수 윤정환씨는 축구기술지도를 하겠다고 나섰다. 이들은 돈 대신에, 조금 번거롭지만 자신의 재능을 직접 내놓는 방법을 택했다.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하겠다고 나선 이들의 모습이 신선하고 아름답다.

〈홍찬식 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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