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희수/터키돕기 시민들이 앞장서자

  • 입력 1999년 8월 26일 19시 55분


터키에 대지진이 일어난 지 열흘, 폐허의 도시 이즈미트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아직도 건물 잔해에 깔려 있는 2만5000여명의 실종자들이 혹시 스며드는 단비로 목을 축이고, 끈질긴 희망의 삶을 이어갔으면 하고 염원해 보지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리히터 규모 7.4의 강진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최악의 대재앙이었다. 남한 면적에 버금가는 피해지역의 참상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다. 10만 가까운 사상자와 실종자를 내고 끝없는 폐허 속에서 20만명이 넘는 이재민들이 절망하고 있다. 그들은 바로 경계를 허문 우리의 이웃이고 우리의 형제들이다.

국제사회는 지구촌 인류애라는 숭고한 이념으로 자신의 일처럼 발벗고 나서 터키를 돕고 있다.

현지 언론의 보도를 종합하면 지진 초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미국 일본 독일 이스라엘 그리스 등이 보여준 인도적 노력과 헌신적인 자세는 터키 국민의 깊은 감동과 존경을 자아내었다. 재난을 당한 민족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 서로 돕는 숭고한 인도주의야말로 지구촌 시대 문화선진국의 가장 기본적 자세일 것이다. 나아가 교육적 측면에서도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세계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이런 면에서 터키의 재난에 대한 우리의 대응 시점과 자세는 너무나 미흡하고 부끄러운 수준에 머물고 있다.

터키는 한국과 같은 우랄 알타이 문화를 이루고, 먼 과거 중앙아시아에서 한 조상으로 살았다는 민족적 동류의식이 매우 강하다. 6·25전쟁 때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약 1만5000명의 군대를 파병해 30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며 우리를 위기에서 구해 주었다.

지난 50년간 국제무대에서 한국문제에 관한 한 무조건 지지를 보내준 것도 터키다. 그래서 한국인이 터키에서는 최고의 일등국민 대접을 받고 있다. ‘코레’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물론 ‘한국공원’ ‘한국전 순교자 거리’ 등 어느 도시를 가도 한국을 생각하고 기념하는 터키인의 따뜻한 마음씨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최근에는 한국이 터키와의 무역에서 매년 10억달러에 달하는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또 한국산 시계의 70∼80%를 수출하는 나라도 터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난 50년간 풍요에 가려 까맣게 터키를 잊고 살아왔다. “지금 터키의 폐허는 6·25전쟁 때 부서진 한국의 모습 그대로”라고 울먹이는 한 터키 참전용사의 절규가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흘러나온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꾸짖는 목소리처럼 들린다. 현재 터키가 당장 필요로 하는 것은 부상자와 생존자를 위한 간이 의료병동 시설의 건설, 의료진과 의약품의 공급 그리고 이재민을 위한 간이 숙소와 식수, 전염병 예방을 위한 방역과 위생조건의 개선 등이라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복구사업, 지진피해 지역의 환경문제, 지진 피해 어린이들의 특수교육 등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끝없이 기다리고 있다.

이미 터키의 한국교민들이 발벗고 구호활동에 나섰고 모금운동도 전개하고 있다. 빌 클린턴대통령의 터키 돕기 대국민 호소에 따라 미국 국민은 물론 재미교포들도 대대적인 터키 돕기 성금을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도 엊그제 엄청난 수해를 겪고 국민 모두가 고통을 나누고 있다. 남의 불행에 관심을 돌릴 여유가 어디 있느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려울 때 같은 어려움을 겪는 지구촌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이야말로 국제적인 균형감각이고 성숙된 국제시민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다행히 양식 있는 시민들이 주축이 되어 ‘터키의 아픔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란 모임을 결성하고 범국민적인 터키 돕기 운동에 나섰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터키의 오랜 한국 짝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은 물론 지구촌의 고통을 함께 나눈다는 우리의 시민정신이 되살아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 믿는다. 터키의 대지진 참사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가르쳐주고 있다. 지구촌의 위기와 재앙을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지구공동체적 차원에서 대처하고 지원하는 세계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제는 시민이 나서야 할 때이다.

이희수(한양대교수·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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