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뼈대 흔들리는 방송개혁

  • 입력 1999년 8월 22일 19시 00분


통합방송법 제정작업은 지난 제206회 임시국회에서도 여야간 합의를 끌어내는데 실패해 언제 입법이 마무리될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새 방송법 제정의 핵심은 ‘방송의 독립성 확보’다. 여야가 이 문제에 뜻을 같이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방안에선 입장이 엇갈린다. 논쟁의 초점은 방송정책권을 누가 갖느냐에 모아진다. 지금처럼 정부가 정책권을 보유하느냐, 신설되는 방송위원회로 넘기느냐의 문제다.

방송인허가권 등 방송정책권은 권력이 방송 장악을 꾀하는 상황에서는 정부의 방송통제 무기로 사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정책권을 방송위에 넘겨 독립성을 확보하자는 것이 국민회의가 야당시절부터 견지해온 입장이다. 이에 반대해온 한나라당까지 최근 신축적 자세로 선회했다.

그런데 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장관은 지난 19일 여의도클럽 간담회에서 국민회의의 기존 방침과 정반대되는 발언을 했다. ‘방송정책권은 방송 영상산업 발전을 위해 정부가 가져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얼마전 국민회의는 연대파업을 벌인 방송사노조에 방송정책권을 방송위원회로 이관한다는 방침을 재천명한 바 있다. 이점에서 이번 박장관 발언은 혼란스럽다. 여당의 기존 방침 재확인은 무엇이고, 주무 장관의 반대되는 주장은 또 무엇인가.

박장관이 현재 방송정책권을 보유한 소속 부처(문화관광부)의 이익을 대변하는 차원에서 당론과 다른 주장을 폈을 수 있다. 그러나 방송정책권 이관 문제는 통합방송법의 핵심사안으로 정부 여당 내에서 의견조율이 끝난 지 오래다. 따라서 이번 발언이 방송정책권에 관한 정부 여당의 입장이 바뀐 것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발언이 방송법 논의에 미칠 영향도 우려된다. 방송법 처리는 몇몇 쟁점사안 때문에 늦어지고 있을 뿐 큰 줄거리는 여야간 합의점에 이른 상태다. 그러나 방송법의 뼈대인 정책권문제가 다시 제기됨으로써 방송법 제정이 새 국면을 맞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방송법 제정을 위해 지난 5년간 500여회의 공청회가 열렸다. 나올 수 있는 모든 의견이 제시된 것이나 다름없다. 또다시 토론을 시작해야한단 말인가.

방송정책권의 방송위 이관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방송위의 권한 비대화와 독선 운영을 걱정한다. 하지만 방송위원들은 민간 인사들로 이뤄지게 되므로 개방성이나 공익성 면에서 관료조직보다 낫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국회가 감시기능을 제대로 발휘한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정부여당은 방송법개정, 특히 방송정책권에 대한 확실한 입장이 무엇인지를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방송법을 둘러싼 혼란이 재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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